​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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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숙

​원곡동, 사회적협동조합 하다

“제가 꿈꿨던 교육과 복지의 하모니,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내가 안산에 왔고 상록수를 보면서 최용신을 만났으니,

최용신의 삶을 닮아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안산과 원곡동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2004년 8월 친정 언니, 오빠가 가까이 있는 신길동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거기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어요. 지금 하다가 위치한 원곡동에는 2014년 외국인 아동 지원사업 기관 센터장으로 발령받아 오게 되었으니 15년을 훌쩍 넘긴 안산 시민이지요.

     이 곳 원곡동은 되게 글로벌하고 다이내믹해요. 일단은 중국 분들이 저희하고 참 많이 닮기는 하셨지만 그래도 달라요. 제 시야 자체가 되게 낯설기도 하고 그랬죠. 그것은 피부로도 느낄 수 있고, 안산에 정말로 또 다른 나라, 지구 하나가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낯설지만 저는 모험도 좋아하고 낯선 곳에 가는 것도 좋아하는 성향이다 보니까 신기하고 좋았어요.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사회적협동조합 하다(이하 하다)의 대표를 맡고 있어요. 원곡동 내 다문화 아동, 취약계층 아동의 돌봄을 하고 있어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초록놀이터사업, 2019 도시재생뉴딜주민참여 프로젝트로 꽃떡하다, 안산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마중물 사업 등의 공모사업도 하고 안산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초등생 돌봄센터인 다함께돌봄센터 제1호점 신길가치키움터를 운영 중에 있어요.

     이외에도 제가 위플레이안산이라는 놀이모임에 속해 있는데 올해 안산이 2020놀이혁신 선도지역으로 선정됐어요. 특별히 저희 하다가 아동의 놀 권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지금 ‘안산형 놀이문화 조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안산 25개 동 240명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선착순 신청받아 안산 9개 공원 16개 모둠이 놀고 있어요.

     그 사업 때문에 너무 바쁜 상태이기는 해요. 안산이 녹지도시 1위잖아요. 녹지를 이용해 아동들이 노는 것을 보고 어른들이 ‘그래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해.’라는 인식변화가 생긴다면 아이들의 놀 권리에 일조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을에서는 주민자치위원인데 놀이혁신 사업때문에 바빠서 많이 못 움직였어요. 죄송하죠.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사회복지법인 안산제일복지재단에서 외국인 아동지원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센터장을 구하고 있었 어요. 늘 저는 유아 관련 일을 하면서도 교육과 복지가 맞물려가는 일을 꿈꿨어요. 교육과 복지의 하모니가 잘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라면 그것이 가능하겠다 싶어 2014 년도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덜컥 된 거예요. 그래서 원 곡동에 둥지를 틀게 됐어요.

     그 당시에는 외국인 아동이 어린이집을 다니려면 교육비가 꽤 컸어요. 50~60만 원 정도는 있어야 다닐 수 있었어요. 영아 교육비는 더 비쌌어요. 70~80만 원 정도. 그래서 집 안에 머무는 아이들의 교육 사각지대가 굉장히 컸었죠. 외국인이 상당히 많은 동네다 보니까 그때는 아이들이 넘쳤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교육비 10만 원으로 시작했으니까요. 10만 원으로 온 종일 돌봄을 했으니까요.

     그러다 재단의 사정으로 글로벌키즈센터 운영을 중 단하게 됐어요. 부모님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난 거예요. 그 당시는 보육료 지원이 안 될 때여서 키즈센터에 들어온 학부모를 통해 자리 있냐고 물어보고 오시고 어떤 분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전화해서 오신 분들도 있었어요. 이역만리를 와서 저희를 믿고 아이들을 맡기셨는데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재능 기부해주시던 분들, 우리 소영선생님이랑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죠.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저희 센터에 불법체류자 가정의 자녀가 있었거든요. 말 못 할 가정사로 호적에도 못 올라간 아이 4살인가 5살 때 왔어요. 3년을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 손이랑 얼굴이 노래지는 거예요. 병원을 데려가보라 말씀드렸더니 호적이 없으니 의료보험이 안 되잖아요. 저도 병원을 왜 가지 못하는지 알지만 빨리 데려가 보라했더니 병원을 못가고 약국을 간 거예요. 감기몸살 약만 지어 먹었는데 아이가 더 노래지는 거예요. 안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죠. 병원에 가면 무조건 10만원인거예요. 치료비가. 그래도 동네 소아과를 갔더니 이상하다고 큰 병원을 가라는 거예요. 엄마도 병원비가 걱정되고 호적에 없는 아이니까 선뜻 못 데리고 가는 걸 제가 안 되겠다 싶어서 세이브더칠드런에 협조 요청을 했더니 다행이 의료지원을 해줬어요.

     아이가 황달이 너무 심하다 못해 급성백혈병으로 가기 직전이었던 거예요. 사람이 참 무지하면 그럴 수 있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전에도 비슷한 상황으로 하늘로 간 아이가 있었어요. 그게 트라우마였거든요. 그렇게 아이를 보냈던 기억이 있는데 또 보낼 수는 없잖아요. 지금 그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지금도 연락을 하고 그래요.

     여러 가지 일들이 참 많았지만, 그 일이 가장 기억되고 감사해요. 얼마 전 안산시 도시재생센터에서 ‘행복 두끼’라고 기업과 연결된 도시락배달 사업을 했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아이들 일을 많이 해왔으니까 아동 연결을 요청해 오셨는데, 원곡동 내 유관 기관들의 협조로 다문화 가정 아동들에게 행복한 도시락 전달이 될 수 있게 되어 기뻤어요.

     저희는 지금까지도 기존 글로벌 키즈센터 하다를 이용한 다문화 가정들과 연락하기도 해서 명절 되면 서로 인사 나누고 해요. 작년에도 저희가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에서 공모사업으로 떡 사업을 했거든요. 떡 사업을 통해서 저희가 전국대회에서 상도 받고 작년에 송편 판매를 할 수 있었어요. 그때도 생각이 가장 먼저 나는 게 그 아이들 가정이었어요. 예쁘게 포장해 판매 하는 걸 그대로 또 집집마다 돌며 배달했죠. 지금도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어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2017년 협동조합을 설립한 후 지난 8월까지는 제가 급여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무임금대표 신고를 몰라서 그냥 신고했더니 사대보험이 장난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개인지출이 계속 늘어나 퇴직금도 다 집어넣은 거예요. 급여도 없이 끌고 나갔죠.

     지금 이곳도 상상할 수 없이 열악한 공간이었어요. 밖으로 나가야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철문을 열고 나가서 어른들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의 놀 권리 인식개선 환경개선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리모델링 된 거예요.

     게다가 건물주가 좋은 분이어서 벽을 허물고 화장실을 만들었어요. 제가 한 맺힌 사람처럼 화장실에 온갖 정성을 들였다니까요.

     제가 가장 보람 있고 좋아하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 때문에 힘드네요.

Q. 마을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변화는 일단 제가 꿈꿨던 교육과 복지의 하모니, 그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제가 사실 안산으로 이사를 올 당시 마음과 몸이 지치고 힘들 때였어요.

     그래서 친정 가까이 와 조금 쉬려고 했거든요. 제가 안산 들어서는 순간 상록수가 눈에 들어왔었어요. 최용신선생이 제 모토였거든요. 예전에 저희 엄마가 부녀회장을 하셨어요. 그 당시만 해도 마을에서 일어 나는 일들 웬만한 거는 부녀회에서 다 도맡아 하잖아요. 엄마가 부녀회장 하시고 하는 걸 보면서 무척 자랑스러웠거든요. 마을에 잔치가 있으면 엄마가 사람들 불러서 잔치가 되게 풍성하게 되고, 맞춰지고 좋더라고요.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 때 상록수를 읽으면서 최용신을 만난 거예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했는데 2004년도에 안산에 오니 상록수가 눈에 들어온 거예요. 그 당시에 많은 걸 잃었어요. 그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게 적어도 내가 안산에 왔고 상록수를 보면서 최 용신을 만났으니 떠날 때는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최용신의 삶을 닮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센터장을 모집할 때 ‘아, 이거 뭔가 되겠구나.’ 싶어 그때부터 용기가 생겨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면서 제가 안산에서 오십을 넘기면서 ‘이게 맞나? 이게 최용신의 삶인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가지 정리가 필요 했어요.

     키즈센터가 폐원을 하면서 계속 정말로 단돈 10원 벌이도 안 되는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저한테 되물었어요. 이게 맞나?, 이게 최용신의 삶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장 중요했던 게 내가 안산에서 뿌리를 내릴 것인가 아닌가, 뿌리를 내리면 선명해 지는 거고, 아니면 그때는 손을 내려놔야 되는 거죠. 그때는 되게 나름 묵상도 하고 선배들 조언도 듣고 하면서 결론을 내린 게 ‘안산에 살어리랏다’ 였어요. 결론이 나니 일도 선명해 졌어요. 사실은 마을만들기센터 일도 센터 선생님들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결론은 마을이 답이더라고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변화는 저 혼자만 느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원곡동 자체가 되게 노령도시, 마을이에요, 그 속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렇게 끊임없이 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을을 젊게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같이 활동하는 언니들이 그런 이야기해요. “그래도 인숙씨 보면 눈이 정화가 돼.” 하다(HADA) 가 있는 이곳이 이 마을에서는 나름 청정지역이예요. 다 원룸 투룸이긴 하지만 온전히 사람 사는 동네예요. 여기만 건너면 불야성이죠. 원곡동의 교육 특구 청정 지역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죠. 언니들이 해주는 말 이 용기가 되기도 해요. 들어오면서 느끼셨듯이 다른 분들도 깜짝깜짝 놀라세요. 그래서 일부러 마중물 사업 때 어른들도 들어와보라고 공간을 개방했었죠. 원 곡동이 조금 젊어지는 데 일조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너무 되게 복잡하고 다양한 삶들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 변화가 늦는 거 같아요. 나 스스로 가 변화하는 걸 찾고 함께 윈윈(winwin)하기보다는 위로부터 내려주는 것에 익숙하고 변화에 따라가기만 하는, 항상 일꾼이 목마른 동네에요. 행정도 어려운 것이 일꾼을 만들어 놓으면 동장님이 바뀌고, 또 다른 동장님이 오셔서 일꾼을 만들어 놓고 가시고요. 그렇게 순환되다 보니까 변화가 가장 많을 것 같은데 가장 더디기도 한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2018년도에 안산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글로벌 어머니들의 떡사랑으로 마중물사업을 시작했어요. 저희가 아이들 일을 하지만 아이들의 주 양육자인 엄마 들을 돌봐주고 힘을 얻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거든요. 엄마가 행복해야 집이 행복하잖아요. 엄마들에게 소소한 행복과 여유가 있다면 아이들 케어 하는데도 힘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엄마들을 위해서 뭔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 해서 떡을 주제로 사업을 한 거예요.

     원곡동은 전국 최고 다문화 인구가 밀집해 있는 작은 지구촌 마을입니다.

원곡동에는 여러 나라의 음식이 많지만, 우리 음식이 없어요. 떡집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내가 아무리 다문화 속에 일을 하지만 우리나라가 없는 다문화는 아니다 싶어서 떡을 한번 해보자 했고, 때마침 좋은 떡 선생님이 연결이 됐어요. 선생님을 모시고 3년째 공모 사업을 하고 있어요. 원래는 올해 떡 공방 카페로 거점 공간을 하려고 했었어요.

     작년 2019도시재생한마당 때 저희 하다(HADA)가 주민참여 한마당 상을 받아서 LH의 지원으로 떡 패키지를 완성했거든요. 그래서 거점공간 사업을 받아 일자리 창출까지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공간을 임대하고 연결 하는 것이 잘 안됐어요. 코로나가 계속 이어져서 올 한해는 공모사업만 가게 된 거죠. 내년에는 거점 두개를 생각하고 있어요. 떡공방 카페가 다문화 특구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른 하나는 놀이활동가들이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거점공간이예요. 저희 하다(HADA) 공간과 동동작은도서관에서 공간을 내주기는 하지만 우리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안산 25개 동에 아동의 놀 권리가 전파되어 놀이 깃발이 꽂히길 기대하며, 돌봄센터를 기반으로 한 놀이 거점 공간과 떡 공방 카페 운영 수익을 통해 아동들의 놀이를 지원하고자 하는 미션을 마음에 품고, 이웃과 함께 잘 지내고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이 한 명이 자라는데는 마을 하나가 필요합니다.’ 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좋아하는데, ‘마을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게 하는 것’이 어른이 제가 할 일임에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즐겁게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 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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