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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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훈

반월동, 반월동 주민자치위원회

“마을 사람들이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느낀 것만 해도 고맙더라고요.

동대표로 회의에 갈 때는 주민들이

마을 일에 대해 물어보시고 의견도 주셔서

저를 믿어주시는 것 같아요.

Q. 안산과 반월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제가 원래 태어난 곳은 서울이고, 결혼 이후에는 안양, 군포에서 살았어요. 안산은 공업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애들 데리고 살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4년 전에 일 때문에 반월역에 처음 와 봤어요. 4호선 역세권인데, 논밭이 정말 많아서 너무 놀랐어요. 사실 제 나이가 오십 가까이 되니까 자연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은퇴 후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가 너무 좋고, 아내도 보고 나서 마음에 든다기에 한 달도 안 돼서 반월동으로 이사 오게 된 거예요.

     제가 아파트 15층에 사는데, 논하고 밭만 보이거든요. 문 열면 여름에는 개구리 소리, 새벽에는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새 소리 다 들려요. 겨울에는 지푸라기 타는 냄새도 나고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런데 이사 와서 보니 솔직히 말하면 반월동이 좀 특이하더라고요. 여기는 수도권이어도 도시가 아니라 시골인 거예요. 농사짓는 분들도 많고. 주민들도 주로 장 씨, 한 씨 같은 씨족으로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는 씨족 개념이 강해서 오히려 마을 일이 안 됐다는데 외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마을 활동이 활발해졌어요. 그리고 지역 토박이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다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불러요.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처음에는 제가 복지팀에 있어서 어린이날 행사 지원하는 일을 했어요. 중고 물물교환하는 아나바다 행사를 두 달인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했고요. 그때는 그 외에도 다른 팀도 돕느라 바빴죠.

     이 동네는 마을 이름을 따서 가을마다 반달마을 축제를 합니다. 이게 가장 중심행사죠. 반월동에서 태어 나거나 사시는 분을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회도 했어요. 그야말로 실력가들이 두 시간 가까이 재능 기부했죠. 누가 들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 반응이 되게 좋더라고요. 반달공원 야외에서 저녁 6시부터 조명이랑 무대 세팅해서 했는데 저도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어요. 안타깝게도 재작년에는 구제역, 금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2년간 못했네요.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이 되고 나서 한 5~6개월 지났을 때 즈음, 2017년에 마침 팀장 자리가 공석이 돼서 남자인 제가 하게 됐어요. 아시다시피 마을 일에 여자 분들이 많잖아요. 그때는 아나바다뿐만 아니라 딸기 체험, 복날 어르신 삼계탕 대접 등 소소한 것을 많이 했어요. 생각보다 바빴어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기획했어요. 역사 앞에 ATM기를 가져다 놓고, 반월도서관에 그늘막과 벤치를 설치하고, 꽃도 심고요.

     여기는 대부분의 마을 활동이 부족한 거 채우고, 잘 못된 거 고치는 개선사업이에요. 올해 연말에 둘레길도 완공되는데, 요즘 들어 외부에서 지원도 되고 해서 조금씩 만들고 있어요.

     주민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달라서 기존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 같은 개발을 원하지만, 여기 새로 오신 분 들이나 어린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생각이 달라요. 저도 불편한 것만 약간 개선해서 기존 자연 상태를 더 아름답게 하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아파트를 지으면 가격이 올랐지만, 지금은 자연 자체가 가치거든요. 어차피 개발제한구역이 풀리기도 어려운데 지금 상태에서 최선의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예전에는 회사생활만 했어요. 이제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되다 보니까, 시간적 여유가 생겼어요. 어차피 낮에나 일이 많지, 저녁에는 술 먹는 거 빼놓고 일이 없습니다.

     우연히 2016년에 이사 온 지 석 달째엔가 동 대표에 자원하면서부터 마을 일을 하게 된 겁니다. 6개월째에는 옆에서 자꾸 가자 해서 주민자치위원회에 오게 됐고요.

     직장에서는 보통 이해관계로 얽혀서 술 한 잔 먹어도 목적이 있는데, 동네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까 좋더라고요. 동네 사람들이 저하고 살아온 것이나 성향은 달라도 뜻은 같으니까 거슬리는 것도 없고, 어울리는 게 재밌어요.

     집에서도 제가 마을 활동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서울에서 새마을운동, 바르게살기 운동을 하셔서 저도 마을 활동이 낯설지 않고요. 저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도 나 닮아서 하나보다.” 하셨어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마을 활동하기 전에는 오로지 직장 일만 했거든요.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까 또 다른 게 보이더라고요. 마을 활동 하다 보니까 재미도 있고, 좋아지는 게 보이니까 성취감도 있더라고요. 하면서 뭘 개선했으면 좋겠고, 무엇을 더 해야 할지도 보이고 하지만 마을 일이라는 게 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서로 공감하고 이해시키면서 해야겠더라고요. 지나가는 얘기로 열 가지 이야기하면 두 가지는 위원장님이 허락하셔서 힘을 받으면서 했어요.

     역시 마을 활동은 내가 구상했던 것이 현실화될 때,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사람들이 관심 갖고, 호응해줄 때도 좋고요. 특히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마을 활동을 못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사업이 어떻게 돼 가냐고 물어봐주시고, 어르신 잔치 같은 거 하면 거의 500명 이상 어마어마하게 오셔서 그게 좋아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마을 활동을 거창하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동대표를 하다 보니까 떠밀려서 하게 된 거지요. 그저 외지에서 온 저는 부족한 게 보이는데 여기 주민들은 대부분 오래 사셔서 불편해도 익숙해서 편한 거예요. 처음 일 년 동안은 “이런 게 있으면 좋습니다.”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사업으로 해보라고 힘을 실어 주시더라고요.

     반월동은 기존에 계시던 분들, 씨족 사회가 공감하거나 도와주지 않으면 사업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95% 가까이 개발제한구역이라 땅이 많아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하다못해 땅에 꽃을 심으려고 해도 기존에 있던 어르신들의 협조가 없으면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녀회나 어머니회를 마을만들기에 자꾸 동참시켜요. 오시려고 하지 않으시는데 그분들한테 청사진을 보여드리고 다른 지역의 성공사례로 계속 설득해요. 결국 시간을 들여야 되는 일인 것 같아요.

     일 년이 지나니까 이분들의 마음이 보이더라고요. 기존에 농사짓던 분들은 계속 농사를 짓지만, 자녀들은 농사 보다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싶어 해요. 요즘 경관 농업 많이 하잖아요. 유채단지의 경우 기름도 짜고, 나물도 팔고, 관광수익도 얻고, 일석이조의 수익구조가 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저와 같이 생각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고 전문 지식도 있어야 하죠.

     잘못 말하면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직장에서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마을은 그런 게 없잖아요. 주민들을 대하는 게 껄끄러울 때는 같은 여성분들이라 그런지 간사님 같은 분들이 나서서 잘 해결해 주셔요. 부득이 제가 직접 나서야 할 때는 정공법이 제일 나은 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차라리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오히려 제일 빠른 해결방법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주민들이 좀 거슬리고 기분 나빠해도 목적은 같으니까 결국 이해 해주시더라고요.

Q. 마을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완전히 변했죠. 제가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 다니고 지금까지 거의 직장 생활뿐이었어요. 10년간 항공사에서 근무했는데 아침 일찍 출근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새벽에 전화가 많이 와서 거의 3시간도 못 잔 것 같아요. 주중에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다 보니 휴일에는 집에서 꼼짝 않고 움직이기 싫어했어요. 그런데 직장을 옮기고 나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동네 주민들이 부르면 나가고,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죠.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성과에 대한 압박이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마을 일은 돈 벌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가 여기 온 지 4년, 마을일한 지는 2, 3년밖에 안 돼서 많이 변한 것은 없어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느낀 것만 해도 고맙더라고요. 동대표로 회의에 갈 때는 주민들이 마을 일에 대해 물어보시고 의견도 주셔서 저를 믿어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위원장님께서 제 의견을 많이 반영해서 내년도 사업으로 추진해보자 할 때 가장 뿌듯하고 고마웠습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금년에 못했던 마을 계획을 내년에는 제발 코로나 상황이 종식돼서 하루빨리 하고 싶어요.

     원래는 반월동에 상인회가 없어서, 올해 위원장님이 다 찾아다니면서 상인회를 만들려고 하셨어요. 그리고 농협 앞 복개천에 풍물시장 같이 마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을 만들고 싶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사업 추진을 중단한 상태예요.

     처음에 마을 일을 맡았을 때부터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시다시피 4호선 전철이 주변보다 높아서 반월동이 쫙 보여요. 확인해보니 전철 이용객이 하루에 만 명, 4호선을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25만 명이더라고요. 반월역 주변에 경관농업단지 혹은 농촌체험단지를 조성하면 그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내려서 사진이라도 찍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잖아요. 농사짓는 분들 협조를 구해야 하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쉽지는 안겠지만 지하철 4호선이 있어 접근성도 좋아서 앞으로 추진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안산시 문화재단에서 예술인 대상 지원사업 일환으로 공모사업에 채택이 돼서 12월부터 반월역사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마침 작년에 마을 조사를 통해서 반월역사가 30년 이상 오래되고 낡았음에도 지원이 잘 안 돼서 페인트칠 한 번 못한 것을 알 게 됐거든요. 이번에 물 새는 것도 보수하고 예술인들 이 역사에 그림도 그리고, 예술 작품도 전시할 겁니다.

     앞으로 반월천, 건건천 천변에 꽃을 심는 가든 사업 도 추진하려고요. 올해는 공모사업에 채택되지 않았는 데, 내년에 5개년 사업으로 해서 도전하려고 합니다. 내년에는 제일 큰 사업이 될 거예요. 사업은 많지 않지 만, 규모가 커질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제일 추진하고 싶은 것은 보행자를 위한 도로예요. 반월동은 구(舊)시가지라 보행자 도로는 없고, 있는 보행자 도로도 가다가 끊기는 데가 많아요. 처음에 저는 그걸 보고 되게 이상하다 했는데 여기 사셨던 분들은 “차 피해서 잘 다니는데요.” 라고 하세요. 불편함에 익숙해져 있는 거죠. 하지만 젊은 사람이나 장애인들은 불편함과 위험을 느끼는 거예요.

     역세권치고는 집값이 싸서 인구가 많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와서 살아보니까 안전 때문에 다시 생각하는 거죠. 젊은 사람이 와도 애들이 크면 다른 지역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 사람이 없고, 결국 인구가 이만 명을 못 넘어요.

     서울도 요즘엔 도로보다 인도를 넓히지 않습니까? 인도가 넓어지면 보행자가 행복도 느끼고, 덕분에 상권도 살아요. 지금은 도로 중간에 상점이 있어도 운전자는 상가를 못 가요. 그런데 차라리 인도를 넓히면 잠시 주차할 공간도 생기고, 운전자나 보행자가 상가를 들를 수 있으니까 상권이 살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은 주민들이 경험해봐야 아실 거예요. 서울에 사는 지인도 인도를 넓혔더니 상권이 두 배 살았다고 하시더라 고요. 저희 아버지도 처음에는 “왜 차 다니기 불편하 게 인도를 넓혔을까?” 하셨는데 지금은 꽃도 심어서 너무 좋다 하세요.

     처음에 이런 말 할 때 아무도 호응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사람들 만날 때마다 얘기했더니, 지금은 많이 호응해 주시고 위원장님도 내년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자 하셨어요. 시간이 걸려도 하나씩 변해 가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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