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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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사이동, 벚꽃사이마을협동조합

“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길거리 쓰레기가 보기 싫어지고,

내가 다니는 길에 있는 문제에 관심이 생겼어요.

Q. 안산과 사이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성남에 살았는데 남편 직장이 여기라 출퇴근을 했어요. 그러다 제가 직장 그만두고 싶은 핑계로 오게 되었어요. 아이 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시곡중이 괜찮다고 해서 알아보니 좋더라고요. 작은애가 초등학생이라 초등학교도 바로 있고 해서 바로 이사 왔어요. 이사 온 지 8년 정도 됐어요. 사이동의 첫인상은 그냥 시골이었어요. 슈퍼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차로 돌아다녔답니다. 성남은 병원이고 은행이고 다 붙어 있고 걸어서 다 생활권에 들어가 있는데, 여기는 슈퍼도 좀 멀고요. 살다 보니 지금은 5~10분인데 그땐 시골 같더라고요. 차도 없고 저녁 9시만 되면 동 불도 다 꺼져있고, 너무 조 용해지는 거예요. 지금은 차도 엄청 많아지고 개발도 됐지요. 이사 올 때만 해도 조용한 동네였답니다. 안쪽 으로 논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서울, 성남 살 땐 시골이나 가야 논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선 논도 볼 수 있으니 시골이라 느낀 것 같아요. 애들한테 보여주기도 좋고 이사 잘 왔다 싶었어요.

     사실 성남 살 때도 직장을 다녀서 동네 사람들하고 친하게 안 지냈고. 성격이 내성적이라 먼저 친해지지를 못했어요. 그런 절 신랑 친구의 부인이 많이 이끌어 줬어요. “집에만 있지 말고 나와라.”고 해서 동네분들 하고는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됐어요. 사이동으로 이사 왔을 땐 월세였는데, 집주인이 엄청 좋았어요.

     버스가 교통편이 불편해서 면허를 땄어요. 52번 한 대가 오이도에서 오는데 차로 20분이면 갈 마트를 버스 타고 가면 40분씩 걸리니까 운전을 하자 한 거죠. 처음에는 직장도 그만두고 살림을 하겠다, 했는데 한 달 밖에 안 가더라고요. 전 직장에서 재택근무라도 해 달라 해서 2년 정도 일을 했는데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애들도 재택근무를 하니까 일하는 엄마가 아니라 집에 있는 사람으로 보더라고요. 햇빛 보기도 힘들고 그래 서 그것도 때려 치고 몸 관리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신랑 친구 와이프가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고 같이 배워보자 하더라고요. 제 일이 컴퓨터로 하는 일 이라 손글씨 쓰는 일이 없어서 점점 악필이 되고 있던 차라 재미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벚꽃사이마을협동조합(이하 벚사마)의 조합원으로 일 하고 있어요. 벚사마가 사이동주민연합회에 들어가 있어서 2년 정도 마을 활동으로 김장하기, 복드리 행사 (경로당이나 독거노인 분들께 삼계탕 대접 등)의 일도 하고 축제도 했어요. 또 위플레이 안산이라고 놀이 기획을 하는 단체에 속해 있어요. 놀이기획자는 어떤 문제를 인지하고 이를 놀이를 통해 태도를 가르쳐 개선할 수 있도록 놀이를 기획하는 사람들이에요.

     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진행한 놀이커뮤니티 기획자 양성 과정에서 놀이를 통한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배웠어요. 어릴 때만 해도 밖에서 놀고 하는데 지금은 밖에 못 나가게 하잖아요. 놀이터가 있지만, 미끄럼틀에서 누가 떨어졌다고 하면 위험한 부분을 고쳐주는 게 아니라 폐쇄를 시켜버려요. 사고 났다고 하면 없애버리니까 놀데도 없는데 아이들이 핸드폰하고 있으면 하지 말라 하니까 더 해요.

     올해 안산시가 놀이혁신선도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위플레이안산 및 안산에서 활동하는 놀이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안산시가 함께 12월까지 시범사업을 진행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엄마들의 수다’라고 뜨개질하는 모임인데, 엄마들이 모여서 뜨개질한 거 기증도 하고 추석 때는 전 부쳐서 도시락 만들어 드리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첨엔 캘리그라피 동아리를 하다가 주민공모사업이라 는 것을 알게 돼서 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진행한 공모사업을 했어요. 같은 공모사업을 하는 ‘모두가 꽃이야’ 사업팀과 알게 돼서 같이 일도 했어요. 그러다 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놀이기획자 양성과정을 한다고 해서 들어보라고 하더라고요.

     놀이기획자 양성과정을 함께 이수한 엄마들 중 마음 맞는 엄마들이 우리 동네 아이들을 위해 놀이를 기획하자고 만든 모임이 팝 업맘이에요. 이렇듯 각 동에서 기획자 양성과정을 거친 플레이 메이커들이 모여 위플레이 안산을 하게 된 거죠. 그때 만난 팝업맘엄마들중 벚꽃사이마을협동조합이라는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이동에서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이 있었는 데 그게 끝나고 마을일꾼으로 일하던 분들이 마을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만든 협동조합인데 설립된지가 얼마 안 됐었어요. 조합원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됐고 지금에 이르렀어요. 첨엔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을 활동으로 연결됐네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봉사라고 생각해요. 복지센터에서 예산을 준비해 주는 거지만 그런게 좀 보람 있는 것 같아요. 배울 수 있다는 것,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뜨개질, 꽃꽂이 이런 걸 했 을 때, 완성품을 본 지인들의 반응이 좋을 때 즐겁죠. 또 늘 질문자였던 제가 답변자로 바뀌었을 때 보람을 느껴요. 애들이 “왜 이리 바빠?”라고 할 때 저는 이렇 게 말해요. “바빠야 쉬는 것도 귀한 거다.”라고요.

     요즘엔 뭐든지 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밝아졌다며 저에게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 해요. 알게 모르게 전해 지는 말도 좋아요. 놀이기획자할 때도 애들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어린이의 놀 권리를 옹호하고 어린이와 놀고 기획하는 일을 하지만 정말 어색했어요. 특히 어린 아이들한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우리 아이들도 내가 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놀 때 그럭저럭 대충 놀아주었더니 쌤들이 잘 놀아 준다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칭찬을 들으니까 이 일을 계속하게 되었고, 애들이 변화한 것이 보이니까 ‘나 하나로 인해서, 어른들에 따라 어린이들이 바뀌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핸드폰 쥐고 있던 애가 놀겠다고 밖으로 나오니 큰 변화인거죠. 지금은 캘리그라피 배운 것, 꽃꽂이 배운 것을 모두 어린이와 연관을 짓고 있어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게 아이들이잖아요. 집에서는 못하게 하는데 놀 수 있는 공간을 주니까 분필 하나만 가지고도 스트레스를 풀더라고요. 그런 게 나를 변화시키나 봐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회계, 서류 처리하는 부분이요.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게 공모사업을 하게 해준다는 건 돈을 자유롭게 쓰게 해 준다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더라고요. 내 돈이 아니니 제약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 힘들어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남의 돈 쓰는 거 같지만, 절대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도전을 못 하는 이유가 서류가 너무 많아서예요. 종이가 아깝다고 생각을 한대요. 사업비에 사무용품이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굳이 해야 하나 싶고 어깨너머로 배워도 보고 또 물어 보고 하는데 일관성이 또 없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공모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공무원들이 다른 데로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발을 깊게 담그지 않은가 봐요. 행정이 어쨌든 주민을 위해 있다고 한다면 부득이하게 발령이 나더라도 인수인계는 꼭 해주고 갔으면 해요. 담당자가 안 나와서 돈이 안 나왔다고 하더니 돈을 받으니 두 달 안에 쓰라고 해요. 너희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선 이 것도 안 되고, 저 것도 안 돼. 이러면 그냥 안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회계 참 힘들어요.

Q. 마을 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돗자리를 깔아 줘도 못 해서 “왜 저러고 있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젊었을 때 는 더욱 심했죠.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가장 큰 변화죠. 마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이 가요. 길거리 쓰레기가 보기 싫어지고 내가 다니는 길에 있는 문제가 생기면 관심을 가진다고 할까요? 마을 활동을 안 했으면 몰랐을 거예요. “2년 동안 열심히 활동했으니까 이제 대표해야지?”라고 하시니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마을에 변화는 모르겠어요. 제가 변했죠. 놀이혁신 시범사업을 하면서 공원마다 매일 가서 놀이를 하는데 처음 접해본 애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르더라고요. 하고 싶은 거 해봐라 해도 못해요. 사이동 애들은 그래도 놀이판 안에서 잘 노는 편이에요. 또 언제 하냐고 물어보기도 하죠. 그게 변화라면 변화죠. 다른 동네 애들 노는 걸 보면 놀이에 대한 인식변화를 해야 된다고 봐요. 애들이 힘들지 않고 잘 놀 수 있는 판을 열어주고 싶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팝업과 갯벌 체험을 갔는데, 애 다칠까봐 안 보내는 보호자분들도 있어요. 애는 가고 싶다고 하는데 못 보낸다고, 안 보낸다고 해요. 인식변 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적응 못 하는 애들 중에는 억지로 보내는 보호자가 있어요.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애를 억지로 끄집어다 보내는 거죠. 모든 애들이 놀이를 좋아하지는 않잖아요.놀이동산 가면 놀이기구 10개는 타야 놀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른들이죠. 근데 애들은 달라요. 물론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하는 애들도 있지만, 놀이동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듣고 다녀도 만족하는 애들도 있어요. 보호자들의 인식변화를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려 해요.

Q.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떠신가요?

올해는 캠페인을 해서 어른들의 변화를 보고 싶어요. 아이의 놀 권리에 대한 것이 캠페인 내용이에요. 어른의 변화가 있어야만 해요. 시흥에서는 이미 지속적으로 하는데 안산시는 이제 놀이혁신도시에 선정이 됐어요. 유니세프에서 하는 아동 친화도시를 지정해주는데 그 조건에 맞추려고 안산시와 그걸 준비하고 있어요. 벚사마는 관광두레 사업이 선정되어서 준비하고 있어요. 사이동만의 브랜드 개발을 생각하고 있어요. 사이동 안에서도 동장님이 열정적으로 개발하려고 하세요. 컨셉을 도자기 마을로 하면 어떨까 하는데 잘 안 되고 있어요. 초당초등학교 담벼락도 도자기고, 육교 밑도 도자기이고, 길거리 화단도 도자기로 꾸며져 있거든요. 분소가 있던 곳에 도자기 가마도 들어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공방이 문을 못 열고 있어요. 과정이 너무 힘들지만 열심히 해야죠. 사이동이 지역관광 공동체로 알려지면 좋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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