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사람들_0026_박계화_2.jpg

박계화

본오2동, 본오2동 주민자치위원회

“밤 늦게 길에서 쓰러진 어르신의 보호자를 찾기위해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응급 상황에 자식보다 먼저 연락 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보람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안산과 본오2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셨나요?

안산에 온지는 18년됐고, 처음에는 부곡동에서 10여 년 살다가 본오2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안양에 살았는데 직장이 안산이고, 또 복잡한 동네를 벗어나고 싶어서 왔어요. 안산을 한 바퀴 돌아보니 녹지도 무척 잘 되어있고, 평온해 보이는 분위기에 살기도 좋다고 하여 이사를 했어요. 처음 부곡동으로 이사와서는 직장생활만하고 이웃하고 교류나 친밀감은 전혀 없었어요. 본오2동으로 와서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은 매일 같은 생활이었어요. 마을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Q. 마을에서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하시나요?

본오2동주민자치위원회 일은 6년 차입니다. 위원을 3년정도 하고, 간사 일을 1년 했어요. 그리고 11기 주민자치위원장이 되어서 1년 반 정도 활동하고 있어요. 처음 주민자치위원회에 들어와서는 정말 재밌었어요. 동네에서 마을을 위해 뒤에서 봉사하는 단체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과 부담이 없어서 좀 더 재미를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간사를 하다가 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책임감, 중압감이랄까 그런 거 때문에 힘들어졌어요. 사회봉사단체는 유급의 보수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서 봉사하는 마음이 없이는 좀 힘들어요. 저는 봉사심, 주민을 위하는 마음이 크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사람들과의 교류 때문에 힘들었던 적도 있어요. 학창 생활에 리더십 있다는 말을 많이 듣긴 했는데, 주위에서 리더로 인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잘 활동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치위원들이 저보다 연배가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 주시고 사업이 작든 크든 잘 협조 해주셔서 재밌게 하고 있어요.

     위원장을 맡고는 주민자치위원회 선배들의 기존 사업도 있고, 노인정 5곳을 찾아가서 매년 다른 프로그램 으로 어르신들이 만족할 만한 공연도 하고, 식사 대접 을 합니다. 노인정 행사만큼은 빠지지 않고 하려고 했 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일정을 하나도 못 하고 있 는 것이 굉장히 아쉬워요. 그리고 저소득 독거노인 어르신 10분을 발굴해서 요구르트 배달 사업을 하고 있어요. 한동안 TV에서 독거노인이 홀로 가시고는 몇 달 뒤에 발견되고 이런 기사가 많았잖아요. 그래서 착안을 하여 주민자치위원회 회비로 요구르트를 배달해 드리고, 요구르트 안 없어지면 연락이 오게끔 해서 어르신을 살펴 드리고 있어요. 구호물품 물자가 단체에서 들어오면 우선순위로 그 분들에게 먼저 전달합니다. 추석 때 신안산로터리 클럽에서 이불이 구호 물품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발 빠르게 움직여 어르신들에게 전달해 드릴 수 있었어요. 명절 때도 그 어르신들을 방문해서 명절 선물을 드리고, 자녀분들의 안부도 묻고, 말동무도 되어드리며 찾아뵙고 있어요. 그리고 2019년도부터는 안산시협치협의회 혁신공론 분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각 동에서 동장님의 추천을 받고, 시에서 뽑아서 활동하는 단체예요.

     첫해에는 열정적으로 미팅이나 회의에 한 번도 안 빠졌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주춤해졌어요. 세 개의 분과에 75명 정도 협치 위원이 있고, 시민 시장님이라고 호칭하며, 안산시의 사업을 시민의 눈으로 감독, 평가하는 일을 해요. 그리고 안산시의 25개 동주민자치위원장들이 모여 각 동의 현안을 살피는 모임인 안산시 주민자치위원 협의회의 사무국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협의회의 임원으로 안산시마을만들기지원센터 운영위원 일을 같이하게 되어 운영 현황을 보고 받고, 평가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마을 활동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됐어요. 직장 생활을 오래 하면서, 가까운 이웃과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이 로망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다 크고 직장을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 생각하다가 우연한 계기에 직장을 그만두었어요. 동네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지냈어요. 그런데 6개월쯤 지나니 무료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몇십 년 을 직장을 다녔는데 다시 직장을 다닐 용기는 나질 않고요. 그러다가 주민자치위원 공개모집 현수막을 보고 어떤 활동인지 찾아보게 됐어요. 좋은 일을 하면서 살 거리를 찾고 싶었는데 그때 주민자치위원회를 알게된 거죠.

     본오2동에서 9개의 유관단체가 김치 나눔 봉사, 거리정화 청소, 독거노인 살피기, 불우아동들 돕기 등 참 좋은 일을 하고 있었어요. 주민자치위원회 일을 하면서 그동안 너무 내가 편하게 살았고, 숨은 주민들이 불우이웃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됐어요. 정말로 아무 대가 없는 맹목적인 봉사심이 처음에는 저에게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복지 제도 너무 잘 되어 있잖아요. 특히나 의료 복지가 너무 잘 되어 있고, 우리나라가 정말 살기 좋은 나라예요. 이렇게 단체 하나하나가 모여서 활동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하다 보니까 계속해서 젖어 들면서 한 사업을 마무리하면 나도 모르게 흡족한 마음이 듭니다. 이래서 마을 일을 하는가 보다 느낍니다.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너무 많은데, 저만 느꼈을 이야기를 할게요. 제가 주민 자치위원회 일을 하면서 어르신들 집을 방문하는 일이 있는데, 그때 소금과 간장만을 반찬으로 식사를 하시는 분을 보았어요. 그래서 단체와는 별개로 6년째 일대 일로 반찬 봉사해드리는 86세 어르신이 계십니다. 그 분은 요양보호사 서비스를 2~3시간 받고 나면 온종일 혼자 계세요.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 밤 열 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였고 병원이었어요. 그 어르신 신원 조회를 하니까 봉사하고 있는 제 번호가 있 어 전화한다고 했어요. 어르신이 길에 쓰러져 계시는 걸 발견하고 보호자를 찾는 와중에 저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왕래가 없는 아들, 딸에게 연락하고 응급실로 갔던 상황이 한 번 있었어요. 이런 응급상황에 자식보다도 내가 더 빨리 연락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같았어요.

     그때는 마을 일이 정말 보람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경로당 행사할 때,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했던 걸 기억하셔서 길 가다가도 알아봐 주시고, 아가씨 같은 데 싹싹하게 일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면 기분 좋아지고 보람을 느낍니다.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과 극복 방법은 무엇인가요?

사람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요. 교육과 워크숍이 단체 마다 많은데, 주민자치위원회가 상위 단체이다 보니까 매번 참석해달라고 하는 곳이 많고, 우선순위가 됩니다. 위원회 분들이 본업이 있고 봉사개념으로 짬내서 하시고 있는데, 교육들은 평일 주간에 이뤄지고 있어서 참석이 쉽지 않아요. 그런데 주최측에서 참석 인 원을 채워 달라고 하시면 너무 힘이 들어요. 본업을 두고 여기 참석하시라 할 순 없어요. 서로가 마음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걸 강압적으로 해서는 안 되잖아요. 대가를 주면서 하는 일 같으면 강압이 들어가도 해결이 될텐데 그럴 수 없는 부분이라 너무 힘들었어요.

     위원장 혼자만의 열정을 가지고서는 할 수가 없고, 옆에서 2~3명이라도 뜻에 협력해주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극복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주민자치위원회가 25 명 정원에서 현재는 20명 정도 되는데 보조 역할로 서포터 해주는 두세 사람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어딜 가든 실과 바늘처럼 2인 1조, 3인 1조 이렇게 고정적으로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Q. 마을 활동을 하시면서 직장생활을 하실 때랑 달라진 점과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경제적인 여유를 느꼈다면 봉사 하면서는 마음의 여유를 느끼죠.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아요. 나도 누군가를 위해서 큰일은 아니지만, 내가 봉사함으로 몇몇 분들이 한 번이라도 편안함을 느끼시는 것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요. 이불 하나로 사시사철 사시는 분한테 이불을 가져다드리니까 정말 좋아하셨 고, 여름에 선풍기도 하나 없이 생활하시는 분한테 선풍기를 전달해 드리니까 진짜 고마워하세요. 이런 어르신들을 보니까, 그들이 잠시나마 선풍기를 시원하게 돌릴 수 있고, 날 추워지는데 이불을 따뜻하게 덮을 수 있는 그런 것으로 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차이점이 있겠지요. 그리고 마을 일을 처음 한다고 했을 때, 식구들이 매우 좋다며 격려해주었어요.

     봉사자들이 퇴근을 하고 난 저녁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회의도 한 달에 한 번씩 하는데 5시에 하고, 저녁 퇴근 시간 이후에 활동 대부분 이뤄집니다. 처음에는 신랑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봉사활동에 푹 빠졌다고 할 정도로 저녁에 가족 식사를 책임지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불평, 불만 없이 응원해줬어요. 이런 가족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지만 마을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Q. 위원장님의 활동으로 마을에 생긴 변화는 무엇인가요?

일개 주민 하나가 마을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굳이 찾자면, 우리 동에 주민자치위원회, 통장협의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바르게살기, 자율 방재단, 어울림 봉사단, 새마을 부녀회, 체육회, 방범대 9개의 유관 단체가 있어요. 9개 단체가 서로 무척 협조적이십니다. 저보다도 나이 많으신 분들도 잘 따라와 주시고, 사업적인 일이 생기면 이의 제기 안 하고 잘 협조해 주십니다. “주민자치위원장이 하자면 하지 뭐."라고 하면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단체장들과의 워크숍을 제가 주관해서 제주도 호텔 모시고 진행한 적이 있는데, 가서 정말 단합이 잘 됐어요. 모든 분들이 재미있고 좋으셨는지 아직도 주민자치위원장 임기 끝나기 전에 또 기대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유관단체 사이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동에서 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 본오2동은 이런 문제점이 없고, 부드럽게 잘 진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Q. 본오2동 주민자치위원회의 계획과 위원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올해 마을 사업이 3년 차 마지막 단계인데 코로나 때문에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코로나로 인한 타당한 이유가 되기때문에 내년에는 좀 부드럽게 공모 사업이 진행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모 사업을 해서 수월하게 내년에 마지막 단계를 잘 마무리 하고 싶어요. 또한 우리가 월피동 광덕지구, 대부동에 이어 안산에서는 세 번째로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230억의 사업이 선정돼서 청사뿐만 아니라 공원 커뮤니티 케어 등을 재정비하려고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서 올해 3년 차 마을 사업을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주력하려고 계획했어요. 상황이 되지 않으니 3년 차 사업 마무리와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을 내년에 같이 추진해야겠지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본오2동이 올해 선정되어서 4년 동안 사업을 집행해야 한다고 알고 있어요. 도시 재생 지원센터가 있고, 유관단체들은 각 동에서 일어 나는 사업에 보조적 역할밖에 못 합니다. 주도적으로는 못 해도 전문가들이 사업구상을 펼쳐 놓으면, 우리  발맞춰서 협조해주고, 주관해야 하는 부분은 찾아서 주민의 생각과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계획이라면 꿈꾸고 있는 전원생활을 지방에서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을 일에 발을 담그고 일을 하다 보면, 계속 처음처럼 열정적으로 하지는 못 할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자연스럽게 빠져주고, 새로운 열정을 가진 사람이 들어오고 해야 마을이 발전하고 지역의 발전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어떤 분야에 어떤 일이든 후배들도 양성해야 그 분야가 미래 지향적으로 될 것 같아요. 후배들이 들어와서 더 나은 마을 발전에 기여를 하겠죠. 제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많은 분야를 보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접했기 때문에 5년, 10년 후에는 제 개인의 미래도 변화가 되고 발전이 되어 있을 것 같아요.

8. 박계화.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