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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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현

반월동, 반월동 주민자치위원회

“마을 일을 계속해서 하는 이유는,

반월동하면 “거기 살고 싶어.”라는 반응을 보고 싶은 거예요. 그것 말고는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Q. 안산과 반월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저는 반월동이 고향입니다. 10대 할아버지가 반월동 삼천리라는 마을에 터를 잡고 살면서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10년 정도 산본에서 살다가 다시 반월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돌아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예요. 반월동에 살지 않을 때도 완전히 마을을 떠난 것이 아니었어요. 이곳에 친구들이 많으니까 계속 교류하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다시 돌아왔을 때 많이 변한 모습은 없었어요. 오히려 군대를 다녀왔을 때, 3년 동안 많이 변해 있었죠. 전철이 생겼으니까요. 반월동에서 53년을 계속 살았습니다.

     주민자치 위원장이 되고, 다른 동의 위원장님이나 다른 분들을 만나다 보면 반월동이 도농복합도시이고 환경적으로 괜찮아서, 고잔동이나 이런 도시보다는 살기 좋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살기 좋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 입장이 아니라, 나이 드신 분들 입장에서 살기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살기는 좋은 거 같은데, 반대로 따지면 편의성이나 문화적 부분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작년 반월초등학교 졸업생이 4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쉽게 말하면 반월에 신혼부부나 초년생들이 살다가 아이가 취학할 때가 되면 다른 마을로 나가는 거예요. 젊은 사람 층에서 보면 반월이 살기 좋은 건 아닌 거죠. 어떻게 보면 양면성 같기도 하고, 조금은 애매합니다. 반월동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입니다.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제가 주민자치위원장이 된 건 3년 정도 되었어요. 제가 주민자치위원장이 되면서 제일 처음에 하고 싶었던 것은 반월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주민 자치위원장을 하면서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강사들의 면접을 보는데, 이분들 중에는 10년 하신 분도 있고 2~3년 하신 분도 있는데 반월동을 잘 모르고 단지 수업만 하러 다니시는 거예요. 그리고 반월동이 교통 여건상 수원, 안양, 이렇게 인접 도시들이 접해 있다 보니까 머무르는 도시가 아니라 지나가는 도시입니다. 또 반월공단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반월동하면 불쾌한 냄새를 먼저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대로 반월을 알리려고 했어요. 구체적으로 마을을 알리려고 했던 활동은 반월동 로고 디자인 공모전을 해서 로고를 만들었어요. 반월동 주민을 대상으로 초중고 대학 생까지 공모해서 선정하게 되었어요. 공모 할 때 사실 작품들이 너무 적게 들어 올까 봐 걱정을 했어요.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죠. 100점이 신청되었는데 모두가 굉장히 우수한 작품들이었어요. 오히려 선정에서 애를 먹었어요. 채점은 주민자치위원들, 동장님, 사무장님이 기본적으로 1차 테스트를 하고 그다음에 주민참여로 스티커 붙여서 선정했어요. 공모를 진행하며 반월동에 있는 우수한 사람들과 재능에 놀라고, 앞으로 많이 부각시켜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월동 주민 센터에서 만드는 모든 현수막에는 안산시 로고와 반월동의 로고를 같이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로고를 활용하여 주민센터 옆에 포토존을 만들었어요. 매일 쓰레기가 쌓여 있던 곳인데, 이제는 포토존 덕분에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2017년과 2018년에는 반월동에 있는 유적지나 명소를 미술 하시는 선생님과 직접 탐방하여 캐리커처처럼 그림을 그려서 달력을 만들었어요. 주민들과 동장님들이나 시장님 등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리며 반월동의 모습을 알렸어요.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반월동을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밖으로 반월동을 알리는 일뿐 아니라 반월동 주민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반월축제가 공식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진행되는데, 제가 위원장이 되면서 클래식 음악회도 하고 한여름 밤의 영화제도 개최했어요. 주민들이 참여도 많이 하시고, 호응도 좋아서 지속적으로 마을 행사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전 주민자치위원장님과 아는 사이였는데 마을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해서 주민자치위원으로 들어왔어요. 그 때가 2016년이죠. 2017년까지 주민자치위원회 팀장을 하다가 전 위원장님의 임기가 만료됐을 때 제가 위원장 해보겠다 하고 나서니까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투표 없이 추대방식으로 위원장이 됐어요. 나이를 좀 들어 가면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고향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고향이 가까워서 좋고, 고향에 살고 있으니 더욱 소중한 것 같아요.

     그런데 안산시 25개 동 중에 좀 발전이 늦은 것 같이 느껴지니까 반월동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위 원장이 되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한 거죠. 마을을 위해 무엇을 했으면 좋겠고, 내년에는 뭘 했으면 좋겠고 그러다 보니까 마을 활동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나는 마을 일을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마을 활동을 하시는 분 들은 정말 극소수일 거예요. 정말 대단한 분들이고요. 열심히 살다 보니까 마을 일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되는 거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거 아닐까요? 나는 이렇게 반월동에 살다가 반월에 애착심이 생기고 주민자치위원장이 됨으로써 마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애착심이 생긴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자치위원장이라는 것 보다는 반월동 출신이 라는 것 자체에 자긍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주민자치위원장 회의나 다른 동과의 교류가 있을 때, 내가 마을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는 내 고향이니까 잘 살았으면 좋겠고 다른 동보다도 더 많은 사람 들이 살았으면 좋겠고 부자들이 많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반월동하면 “거기 살고 싶어.” 라는 반응을 보고 싶은 거예요. 그것 밖에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제일 즐거웠던 일은 2018년도에 반월공원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주최했을 때에요. 반월동 출신이거나 반월동에 살고 계시는 성악가나 클래식 음악을 하시는 분들을 모아서 발굴했어요. 어머니 합창단, 성악가, 바이올린, 색소폰, 중창단 등 8팀을 모아서 주제는‘가을愛 그리다.’ 부제는 ‘Made in 반월’로 가을음악회를 했어요. 홍보도 대대적으로 반월농협부터 반월 역까지 가로등에 배너를 달아 주민들에게 알렸어요. 배너 설치도 사전승인 없이는 안 된다고 하여 우여곡절 끝에 할 수 있었어요. 준비할 때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뭘 그런 걸 할 수 있겠냐며 난색을 표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런데 음악회를 끝냈을 때는 참가하신 분들과 관람하신 500여 명의 주민들이 모두 잘했다고 칭찬 해주시면서, 다음 해가 기다려진다는 이야기들었을 때 굉장히 뿌듯했어요.

     정말 좋았던 이유를 나중에 생각해보니, 실제로 우리가 유명한 가수를 초청하여 행사를 했다면 그건 일회성밖에 안 될 거 같았어요. 우리 동네 사람들이 하나가 돼서 출연자와 기획자가 어울렸다는 부분에서 감명을 받은 거 같고, 그런 부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마다 음악회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작년에는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지속하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작년에 클래식 음악회 계획을 다 준비 했었는데 행사 5일 정도를 남겨두고 취소되어서 정말 안타까웠어요. 그래도 음악회에서 벽화그리기로 변경하여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어요. 주민센터에서 반월도서관에까지 가는 길이 아이들의 등하굣길인데 그곳에 벽화작업을 하고, 불법 광고지가 지저분하게 붙어있던 전봇대에도 그림을 그려 깨끗한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 해본 적은 없어요. 제 인생관이 ‘힘들면 더 힘들어진다.’입니다. 원래 성격은 무척 부정적이었죠. 젊었을 때, 20대 때는 최고로 부정적이었고 결혼하면서 부정적인 것이 많이 변했고 40대가 되면서 더 많이 변했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부정적인 성격이 많이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제가 만나는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인데, 인생이 20대, 30대, 40대에 부정적이고 힘들게 살았는데 50대에도 부정적으로 힘들게 살면 후배들이 따르겠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50대가 되니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굳이 힘든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람의 마음을 모은 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축제를 하려고 하면 각 마을에 있는 동아리 단체, 직능단체, 학부모 회 다 모여서 보통 5~6번 정도 회의를 합니다. 첫 모임 때는 참석을 많이 하시는데, 갈수록 회의 참석을 안 하게 됩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모임의 중심점이 없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직능단체에서 주민자치위원회가 제일 선임단체이긴 하지만 제도적으로 구속성을 가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모은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한 번에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만나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구심점 이 생기면서 마음이 맞아지지 않을까하는 바람입니다.

Q. 마을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반월 사람들이라는 것이 달라졌어요. 제가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람을 만날 때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새로운 1명이 생기면 101번이 들어왔잖아요. 그러면 101번을 감당을 못해요. 그러면 1번을 잘라내게 되는 거 겠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00명 중에 반월사람들이 많아지고, 반월하고 관련 없는 사람들이 소외되고 많이 만나지 못했어요. 활동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회사 다닐 때나 외부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걸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한 친목이죠. 술을 먹는 시간도 길었고 술 양도 많았어요. 그런데 마을만들기와 주민자치위원회를 하면서는 마을 안에서 알아보시는 분이 많이 생겨 서 술을 많이 먹고 흐트러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지금이 저한테나 반월동에나 좋다고 생각합니다. 누굴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체가 기쁨인 거 같으니까 열심히, 물론 한다고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글쎄요, 2~3년 안에 뭔가 바뀐다는 걸 답변 드리지는 못하겠네요. 무형은 한 번에 바뀌지 않거든요. 근데 유형은 담벼락에 그림 그렸으니까 보이잖아요. 저는 그런 무형의 답 드리기가 쉽지 않네요. 꼭 답을 달라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람들이 ‘반월동도 이런 것을 할 수 있구나!’라는 그런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반월축제 안에서 ‘반월이 좋다’는 행사를 진행했어요. 반월동에 부락마다 삼천리, 용담뿌리, 사사리, 뱀골 등 여러 가지 옛 지명이 있어요. 반월동의 지도를 그리고 지역에 옛 지명을 맞추면 상품을 준다든가 하고, 공원에 있는 정자들에 있는 옛 지명의 유래를 읽으면 쿠폰을 하나 주는 체험장을 운영했어요. 옛날 지명들을 알아가며 반월을 더 알아가면서 애착심을 갖자는 마음에서 준비했어요. 이렇게 자신이 사는 마을, 반월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도록 변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기본적인 축제와 클래식 음악회는 해마다 꼭 해야 하는 행사이고, 반월동의 로고를 계속 알리고 활성화하는 것은 계속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계획 하고 있는 주 핵심 사업은 우리 마을과 주변에 불편함이 있잖아요. 쉽게 말하면 생활하는 곳에서 보이는 주차장이나 인도 문제에요. 우리 마을은 인도가 되게 불편한데 넓힐 수가 없어요. 해결방법이라면 가로등을 지하로 매설하고, 가로등이 차지하고 있던 만큼의 인도를 늘릴 수 있어요.

     이렇게 주민들이 생활하는데 직접적으로 불편한 것 들을 주민자치위원들이 직접 반월동을 돌아다니면서 의제를 도출해서, 시에 건의할 수 있으면 건의하고,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천이 오염되고 냄새나면 약품도 넣어서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진행 할 수도 있어요. 주민자치회로 변환되기 전에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실질적으로 일 년 내내 반월동을 돌아다니면서 뭘 개선해야 하는지 찾아보고 개선해보자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반월동을 알리는 활동으로는 반월동의 사계절을 드론으로 영상화해서 홍보 필름을 만들 계획입니다. 작년에 생각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불가 피하게 실행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꼭 한 번 해 볼 생각입니다.

     저희가 기획 부분에 대해서 내년 사업 계획으로 잡 았는데 세부 내용은 아직 고민 중이예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전문 업체에 맡겨서 할 것인지, 아니면 로고를 만들 때처럼 공모할 것인지 이런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회의는 11월 달에 있는 워크숍 에서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으로는 마을에서 공모를 하면 아무래도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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