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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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백운동, 백운동 주민자치위원회

“주민들은 행정을 돕고 행정은 주민들을 이해하는

백운동이 되고 있어 좋아요.

Q. 안산과 백운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제 고향이 전북 부안 위도라는 섬이에요. 93년 10월 10일에 위도 인근에서 서해훼리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때 위도 주민들도 많이 돌아가셨어요. 그런 일이 있으니까 아픈 얘기도 많고, 정도 떨어지고 해 서 부모님과 섬을 나오게 됐죠. 안산이 도시가 공업 도시고, 먹고살만한 도시라 생각해서 아버지가 선택하신 거 같아요. 93년도에 왔으니까 27년 정도 됐네요. 93년 백운동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공단이라서 주택들도 대부분 5층짜리 저층 아파트였고, 도로가 양옆에는 포장마차들 쭉 서 있었어요. 그때 노래방을 했는데 타향살이 느낌에 정도 안 갔어요. 아무튼 좀 낯설었죠.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주민자치위원장 일을 하고 있어요. 올해는 백사모와 함께 하는 지속가능 비전20 마을살이 사업을 진행하 고 있어요.

     공모사업 같은 것으로 마을 퍼실리테이터 양성 교육도 하고 해커톤이라는 청소년들의 기획 모임 사업도 해요. 작년에 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서 디자인대학을 열어 이때 배운 걸 토대로 주민의 의견을 모아 새로 지은 백운동 청사에 주민 공간도 확보했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저는 대학 나오고 나서부터 장사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제가 장사를 하게 된 건 아버지가 어촌계장을 하시면서 바지락 양식을 하셨는데, 제 어린 기억에 서울에서 바지락을 사러 오신 분이 돈을 엄청 많이 가지고 오셨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장사하면 저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겠구나 싶어 장사를 해야겠다 했어요. 직장생활은 군대 가기 전에 일용직 일주일 한 것 빼곤 안 해봤어요. 원곡동에 제 집이 있어서 인근 보성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당시엔 라성시장이었죠. 그때 원곡동에 외국인들이 몰려들 때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생겼어요. 여유가 생기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회의만 하면 된다고 해서 주민자치위원회를 처음 하게 됐어요. 4년 임기 만료 후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로 갔다가 다시 주민자치위원회로 와서 쭉 이어서 한 거니까 7년 정도 한 것 같아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제가 주민자치위원회 감사를 할 때 각 동에 마을신문을 만들라고 해서 저희도 마을신문 발행한 적이 있어요. 지금은 불미스러운 일로 폐간이 되긴 했지만요. 아이 엄마가 장사를 해서 우리 애를 어린이집, 학교를 데리고 다니다 보니 학부모들과 친해졌어요. 그때 학교 엄마들이랑 마을신문을 같이 만들게 된 거죠. 아들이 커가면서 이런 체험을 좀 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마을신문 한 지면에 학교에서 썼던 그림일기 그런 걸 싣는 면을 만들었더니 학교에서도 좋아하고 호응이 좋더라고요. 동네에서도 광고 지면에 하나에 10만 원씩 받고 홍보도 하니 좋아하고. 매달 한 5,000부씩 만들어 상가, 아파트 각 동에도 배부했죠. 굉장히 좋았어요.

     제가 처음 주민자치위원장이 돼서 주민자치협의회 워크숍을 여수로 갔는데 일동 주민들이 학교도 세우고, 은행을 만들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게 너무 충격이었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말이 되냐?”라고 되물었어요. 근데 얘기를 듣다 보니 공원 조성 문제를 갖고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왜 행정에서 좌지우지하느냐?”라며 의견을 고집하는 우리가 보였어요. 그 길로 일동 위원장님한테 전화해서 방법과 요령을 가르쳐 달라고 했죠. 그 후에도 1년 동안 행정과 계속 이견조율을 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사이 일동 위원 장님 쫓아다니면서 일동의 마을 활동을 지켜보았습니다. 일동은 다 주민들이 하더라고요. 축제 기획도 우리는 업체에 다 주고 사진만 찍고 끝냈거든요,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으로 축제를 하게 됐는데 우리도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 해서, 처음으로 주민자치위원회 회원들이 기존의 우리 생각을 다 반영하여 ‘백운동 사랑마을 축제’를 개최했어요. 우리 주민들 힘으로요. 평가해보니 오천만 원짜리 행사보다 칠백만 원짜리 행사들이 더 좋았어요. 코로나 때문에 못 해서 조금 아쉽죠. 그때 당시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들이랑 하니까 ‘우리도 할 수 있구나.’라는 뿌듯함을 느끼고 좋았죠.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주민자치위원으로 있었을 때는 무언가 주도적으로 하는 위치가 아니었는데, 위원장이 되니까 리더로서 의욕이 앞서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동안 행정 마음대로 다하는 것 같아 1년 가까이 의견충돌이 있었죠. 공무원들하고 우리하고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았어요. 사사건건 우리가 뭔가 하려면 행정에선 안 도와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하다못해 우리가 마을만들기지원센터 이런 데서 교육을 하고 싶어도 그런 걸 왜 하냐 묻고, 동사무소 회의실 사용하는 것도 행정 허락을 받고 하라고 하고 교육받으려고 일동 주민자치위원장님을 부르면 “왜 자꾸 부르냐?”라고 하니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교육해주시는 분들이 오면 미안한 거예요. 제가 안산시마을지원센터가 있다는 걸 2017년에 알았는데, 지원센터 도움을 받으려 하는데 행정의 지원이 없으니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Q. 마을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성격이 많이 유해졌어요. 그리고 공무원의 시선과 민간의 시선이 다르다는 걸 이제 3년 정도 하다 보니까 알 것 같더라고. 행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같이 대놓고 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유하게 하지 못 했거든요. 그땐 막무가내인 제 성격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행정에서는 행정이 주도해야 하는데 왜 주민이 하느냐, 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안 그래요. 많이 밀어주고 같이 하려고 하는 것이 보여요. 행정의 동장이나 공무원들의 생각에 따라서 동이 변하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유하게 변했고, 행정도 우호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주민과 동이 같이 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새로 이전한 동사무소에 마을 퍼실리테이터들과 아이들이 계단 도서관에 ‘맛있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낸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거죠. 아이들의 생각은 어른들과 완전히 달라요. ‘여기는 도서관이 아닙니다.’ 같은 역발상을 하더라고요. 아이들과 마을 퍼실리테이터가 투표를 해서 ‘맛있는 도서관’으로 정했죠. 주민들이 직접 뭘 하려면 행정의 도움 없이는 안됐거든요, 그런데 행정에서 주민들 손으로 이름도 짓고 벽에 걸 수 있게 해준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주민들은 행정을 돕고 행정은 주민을 이해하고 듣는 백운동이 되어가는 것 같아 좋아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백운동은 이제 아파트가 많아졌어요. 그 안에 노인정 이 다 있어서 어르신 케어가 되지요. 그리고 어르신들 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청소년들도 있고, 젊은 엄마들도 많아요. 그러다보니 청소년들 활동하는 해커톤 사업이 작년에 우수상도 받았어요. 동의 성과잖아요. 그래서 올해 해커톤 사업을 또 계속 추진할 사업 중에 하나지요.

     작년에 했던 아이들이 1기이고 올해 하는 아이들은 2기인 거죠, 1기들에게 안전한 여행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획해보라고 했어요. 애들이 다 사전 조사하고 해서 다 기획을 하는데 기특하더라고요. 아이들과 더 많은 기획을 해볼까 해요. 백운동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은, 월피동이나 와동처럼 청소년들이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우리는 마을이 젊은데도 불구하고 그런 공간이 없으니 엄마들의 불만이 너무 많아요. 너무 젊은 사람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일을 하는 게 아니냐, 그런 말을 듣기도 하지만 청소년 활동 공간은 꼭 만들어주고 싶어요. 저희가 작년에 마을계획을 세웠어요. 100인 원탁회의를 하면서 주민들의 생각을 담아 보고 싶었어요. 저희 동네가 젊은 동네에요. 젊은 엄마들과 미팅을 하면서 주민자치회 얘기를 들어보니, 청소년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생각들이 나왔어요. 원곡1동의 청사가 헐린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체육복합시설이 들어서요. 헐릴 당시에 강력하게 요구했던 게, 여기는 아파트 단지 내에 헬스장이 다 있으니 헬스장 말고 우리만의 문화공간을 달라고 했어요.

     처음엔 주민들 의견을 형식적으로 듣더라고요. 그래서 땅파기 전에 문화공간을 달라고 강하게 말하면서, 세부적인 부분은 젊은 엄마들에게 의견을 모으고 지속 가능한 마을살이 공모사업을 통해 양성된 마을 퍼실리테이터가 진행을 해서 마무리를 했어요. 문화공간이 꼭 생기길 바라요. 마무리 계획이 있다면 올해 양성된 마을 퍼실리테이터들과 예산은 없지만, 그냥 모의 퍼실리테이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마을 활동을 하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피하지 말고 일하라고 하고 싶어요. 하다 보면 보람된 일을 한다고 자부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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