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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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

선부2동, 선부2동 주민자치위원회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주민들이

“이런 거 해봤자 똑같잖아.”라고 하세요.

그분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하나씩 뭐라도 바꾸어 보려고 해요.

Q. 안산과 선부2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1998년도에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기 위해 시흥 정왕동에서 안산 선부2동으로 이사 오게 됐어요. 안산에 이현아 선부2동, 선부2동 주민자치위원회 서도 다른 동에서는 산 적이 없고, 선부2동에서만 줄 곧 살았어요.

     시흥에서는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직장을 다녀서 옆 집 사람밖에 몰랐어요. 그러다 안산으로 이사 와서는 다가구 주택에 살아서 그런지 이웃들과 인사하면서 지내게 되더라고요. 처음에 안산은 시골 같은 느낌이었어요. 제가 이사 올 때만 해도 외국인은 거의 없었는데, 5~6년 전부터 외국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임대인이 한국인이고 입주민은 거의 외국인이셔요. 땟골 쪽에 가면 한국어보다 러시아어가 많이 들려요. 어느 순간 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현지인과 외국인 간에 문화 차이로 쓰레기 문제 등등 부딪히는 부분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주민자치위원회에 들어와서 2년에 한 번 석수골 축제, 1년에 한 번 노인회 행사, 매년 5월에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했어요. 2019년 9월에 간사가 되고 나서 바로 10월에 석수골 축제가 진행되었어요. 선부2동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큰 축제였는데 간사가 된 지 한 달 만이라 어려움이 많았어요. 전에 축제할 때는 합창단과 난타단 정도를 초청했는데, 올해에는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각 학교에 협조를 요청했어요. 그랬더니 두 학교가 참여했고, 자연스럽게 선생님, 학부모, 가족분들이 다 오시더라고요. 지금까지 개최한 축제 중에서 가장 많은 주민들이 오셔서 함께하는 축제가 되었어요.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으로는 작년에 처음으로 ‘선부 아리랑’ 활동을 했어요. 이 동네 특성상 다문화 가정이 많아요. 그래서 고려인들과 전통민요를 배우자는 취지로 선부아리랑을 만들었어요. 제가 학교를 통해서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학원 때문에 시간이 어렵더라고요. 고려인센터 팀장님께 사업을 소개하고 협조를 구한 덕분에 다문화가정 아이들 30여 명과 함께 활동 할 수 있게 됐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스피커를 켜고 북을 치니까 귀가 아프다며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국악이라 악보 없이 강약 정도만 표기되어 있었는데, 강사님이 재미있게 수업을 하시니까 나중엔 아이들도 흥미를 가지고 손바닥으로 박자 맞춰가면서 잘 참여하더라고요. 잘하는 아이들도 하나둘 눈에 띄고, 끝까지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아이들을 보니 참 좋았어요. 석수골 축제에서 아이들과 무대에서 아리랑을 불렀을 때 정말 가슴 뭉클했었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주민자치위원회 면접 볼 때 “겨울철 동사무소에서 김장할 때 도와드리고 싶어서 들어왔다.”라고 하니까 면접관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주민자치위원회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그것 때문에 합격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김장 행사할 때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해요. 2017년도부터 주민자치위원회, 2018년도에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두 단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둘 다 단순히 친목 목적이 아닌 봉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어요. 두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관점에서 주민들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아픈데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분들, 홀로 외로운 분들이 많다는 걸 전혀 몰랐었는데, 그때부터 알게 되었어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처음에는 위원 자격으로 회의만 참석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면서도 간사님이나 위원님들이 활동할 때 빠지지 않고 도왔어요. 그러다 보니 시야도 넓어지고, 모르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마을만들기 활동은 제가 주민자치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을 때, 주민자치위원회가 마을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주신 분이 계셨어요. 생소한 분야라 시도를 못했었다가 3년 만에 “다시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을 합해서 공모사업에 신청하게 되었지요. 임은아 교육분과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공모사업을 신청하고, 막상 제가 주체가 되어 일을 진행해 보니까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마을만들기지원센터에 밤늦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 기도 했는데, 항상 웃으면서 받아주시고 도와주셔서, 고맙고 존경스럽더라고요.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더 많이 겪었을 거예요.

     가족들이 처음에는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 부동산 일이나 열심히 하지.”하면서 반대 아닌 반대를 했 어요. 그런데 한번은 동행정복지센터 블라인드가 고장 나서 새로 샀는데 남편한테 세팅해 달라고 제가 부탁을 하게 되었어요. 남편에게는 동행정복지센터는 민원이나 서류가 필요할 때 오는 곳이었어요. 도와주기 위해 처음 동에 왔는데, 행정팀장님께서 감사하다면서 마을 활동할 때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런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부탁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남편이 일 때문에 자주는 못 오지만 재능기부 정도는 할 수 있다며 필요 하면 얘기하라고 하더니 그때부터 도와주었어요. 아이들도 엄마가 좋은 일 한다고 자랑하고 다녀요. 처음에는 제가 시키니까 아이들도 마지못해 갔는데, 이제는 여러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체험을 통해 시야가 넓어진다는 걸 느끼는지 싫다는 소리는 안 해요. 선부아리랑 할 때 아이들이 너무 없어서 저희 아이들을 데려가고, 다음날에는 아이 친구들을 또 데리고 갔어요. 아이들 자신도 엄마를 계속 따라다니다 보니, 엄마처럼 주체적으로 친구들을 이끌더라고요. 같이 석수골 축제할 때 무대에도 서고 하니까 아이들도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축제할 때 스텝으로 함께하며, 도와주고 물건도 옮기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봉사다운 봉사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옆에서 마을 일하는 걸 보고, 같이 하면서 가족들도 함께 그렇게 변하더라고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보람된 것은 일단 제가 바뀌었다는 것이에요. 예전에는 불편한 것도 없고, 집하고 사무실 외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마을 활동을 시작하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가 아이들한테 위험하다든지, 예쁜 공원에 있는 쓰레기 문제를 인식하면서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선부2동 주민들이 그동안 모여 마을에 대해 얘기 나눌 기회가 없어서였는지, 마을에 애착을 갖고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한번 같이해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도 해주셔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올 해 더 활동적으로 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발목이 묶여서 못했던 게 아쉬워요.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만큼 한 것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어요. 지나고 생각해보면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인 것 같 아요.

     마을계획을 진행하면 주민들과 함께 제일 먼저 했던 것이 수세미 만드는 것이었어요. 재능기부를 받아 수세미를 직접 만들기로 했는데 처음엔 조금 겁이 나더라고요. 500개 정도 만들어야 하는데 저 혼자 아무리 열심히 하루에 5~6개 정도 밖에 못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뜻밖에 독거 어르신들께서 본인들이 수세미를 만들어주겠다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셔서 감동 받았어요. 그동안 도움을 많이 받다가,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하셨어요. 마을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먼저 마을을 조사 우리 동네 단체, 학부모, 지역아동센터, 어린이집, 도서관에 계신 주민 20명을 뽑아서 기획단을 만들고, 각 단체마다 4~5명씩 신청받아 60여 명과 실천단을 만들었어요. 마을 조사 결과를 주거환경, 문화, 교통안전, 교육복지 파트로 나누어 보았더니, 32개 일감으로 추려지더라고요. 그것을 시급한 문제 5개를 추리려고 주민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설문 조사지를 1,000부 정도 배포했어요. 설문조사에 응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수세미를 나누어 드렸는데, 우리가 직접 만든 수세미를 마침 잘 활용할 수 있었어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코로나 때문에 주민들을 못 만나게 하니까 그걸 이해 시키느라 죄송하고, 난감했어요.

     동행정복지센터 같은 관공서 출입이 금지되고 10명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해도 의외로 우리 주민자치위원님들이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마을을 위해 일하는 건데 동행정복지센터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니라고 하시면서, 인근 카페에서 모여 만나기도 했어요. 인원이 더 많아지면 도서관이나 경로당에서 만나기도 했고, 더 많이 모여야 할 때는 아침 10시 영업하기 전 칼국수 식당에서 모여서 회의하기도 했어요. 정말 어렵게 추진했어요. 위원장님께서도 좋은 취지로 하는 것이더라도 민폐를 주면 안 된다고 하셔서 최대한 방역을 지키면서 하다 보니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게 됐는데 그것도 추 억이 되더라고요.

     제가 위원으로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힘든 부분들의 원인 대부분이 소통 부재에 있더라고요. 제가 정확히 인지가 안 되면 오해받는 것을 몸소 겪다 보 니, 간사가 된 이후에는 항상 공유하면서 소통하자는 나름의 기준을 잡고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나중에 몰랐다면서 섭섭해하시는 분들이 생기지 않도록 자주 연락을 드리다 보니 불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위원장님께서도 위원님들을 늘 챙기고 먼저 연락하라고 많이 이야기해 주세요.

Q. 마을 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마을에 대한 애착이 커졌어요. 평범하게 살수도 있었던 삶이었는데, 제 활동 범위가 넓어졌어요. 부동산 사업만 하고 살았으면 나만 알고 살았을텐데 마을 활동을 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많이 유해졌어요. 전에는 ‘그럼 안되지.’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집에서도 바뀌었어요. 활동하기 전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잔소리를 많이 했어요. 집안이 어질러져 있으면 전에는 아이들에게 지적했는데 지금은 마을 활동하느라 제가 할 일이 있으니까 그것까지 관심을 둘 겨를도 없고 거슬리지 않아요.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잔소리하면서 치우느라 바빴는데 지금은 뭐 알아서 하겠지 하는 편이에요. 동행정복지센터에도 직원들과 가족같이 지내고, 이웃들과도 부드럽게 잘 지내려고 노력해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조사하는 단계라 아직 큰 변화는 눈에 띄는 것 같진 않고요. 다만, 제 주변의 학부모나 마을주민들이 보는 눈이 넓어진 것 같아요. 저랑 같이 마을 활동을 하다 보니까 그 분들도 깊이 생각하시고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도 하시더라고요. 관심도 없고, 민원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분들이 어떻게 개선할지를 생각하고 고민하시는 게 눈에 보여요.

     예전에 정말 쓰레기가 심해서 출입국에 외국인들 입국 신고 할 때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교육을 해달 라고 민원을 넣기도 하고, 쓰레기 불법 투기하는 사람 찾겠다고 차에 숨어서 감시한 적도 있었어요. 아침마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 쓰레기 치우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동행정복지센터에서도 많이 노력해 주시고, 아이들도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많이 받고, 여러 활동으로 많이 개선되어 가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마을 조사를 끝냈으니까 의제실천까지도 해야죠. 사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주민들이 “이런 거 해봤자 똑같잖아.”라고 하셨어요. 그분들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라도 내년에는 하나씩 뭐라도 바꾸어 보려고 해요. 설문지 취합이 아직 안 되었지만, 마을 조사 결과가 모두 나오면 그것을 토대로 내년에 공모사업에 응모해 보려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마을활동을 하면서 제일 하고 싶은 게 있어요. 동네 배수지에 둘레길도 있고, 운동기구가 딸린 운동장이 있는데, 출입구 초입에 나무가 관리가 안 돼서 우범지역처럼 어두워요. 나무도 정리하고 꽃도 심어서 주민들이 잘 활용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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