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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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래

월피동, 겨자씨커뮤니티

“마을 일로 만난 사람의 가치관이 중요하지,

어떤 종교를 믿고 있는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안산과 월피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1985년 12월에 예술아파트가 처음 분양될 때 안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메뚜기도 많고 개구리도 많고 아주 자연 그대로이었지요. 성포동 예술인 아파트 부근에서 목회하고 있다가 1994년에 월피동 522-14번지에 교회를 건축하며 월피동으로 오게 되 었습니다. 그때 교회를 이전한 후 현재까지 계속 이곳 월피동에 살고 있습니다.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1985년부터 2015년까지는 계속 교회 안에서 목회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부터 마을 사업, 마을 활동을 하면서 마을 목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2016년에 경기도 따복 공동체 사업으로, 이 지역에 명화를 통한 미술교육을 김용호 화백과 같이 시작했습니다.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강의를 했고, 2017년도에도 문화예술 강의를 진행하고 또한 아이들 대상으로는 광덕 어린이 기자단을 만들어 사진 교육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2006년부터 지역아동센터를 시작했거든요. 광덕어린이 기자단 활동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함께 했습니다.

     마을신문 만드는 활동도 했는데, 마실신문 광덕여울 2호까지 작년에 발간되었습니다. 올해는 전반기에 코로나 때문에 어려웠고, 하반기에 3호, 4호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신문 첫 장의 마을 정경은 제가 찍은 사진 입니다. 월피동 한양아파트에 15층에 올라가서 찍은 안산천을 중심으로 하는 월피동 정경을 김용호 화백에 게 수채화로 그려달라고 부탁해서 신문에 수록하였습니다. 편집 후기를 보시면 동네 분들이 모두 마을 기자단입니다. 모두 마을에 사시는 분들이죠. 그냥 평범한 동네 사람들, 동네를 잘 아는 사람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신문을 만드는 거죠. 다 주민이 하는 겁니다. 만든 신문은 집집마다 배달하지는 않았고 주민센터, 병원, 은행, 광덕시장 가게 등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자연스럽게 동네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신문을 만들려고 인터뷰를 할 때 거부감없이 응해주시는 것을 보며 참 감사했지요.

     이 신문을 보시면 우리 동네 사람들, 주민들 이야기가 많이 실렸죠? 커피숍 이야기, 주민단체 이야기, 동네 이야기를 많이 신문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죠.

     2018년도에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광덕지구에서 시작되면서 지난 2019년에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준비를 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재생사업에 대한 하드 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같이 움직입니다. 주민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인터뷰해서 기초자료를 만들고 데이터를 축적하지요. 도시재생 뉴딜 사업 기간은 5년이에요. 2022년까지이니 앞으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마을 재생이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겠죠.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2년 목회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목회 대상과 교회 섬김의 대상이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우리 교회’ 나오는 사람만 ‘우리 성도’가 아니라, 이 지역이 ‘섬겨야 할 사람’이고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마을을 교회 삼아, 주민을 교우 삼아”라는 슬로건을 가진 교회가 있어요. 우리 교회에 나오든 안 나오든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섬겨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거지요. 그 교회 는 시골에 있는 교회이고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의 허브에요. 그 시골의 허브. 그 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을 활동, 마을 목회를 하게 됐죠.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역시 남는 건 사람이에요. 사람으로 인해 힘든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변화 시켜 나갈 수 있는 거죠. 마을에서 함께하는 핵심적인 사람 중 우리 교회 성도는 2~3명 정도입니다. 다 동네 사람들이죠. 저는 우리 동네 목사입니다. 교회가 커지면 커 질수록 지역사회와 아무런 상관없는 교회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우리 교회 1층, 이 공간은 누구든지 들어와 커피 마시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마을 거점공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구성해놓으니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가 되더라고요. 화합되고, 좋은 의견도 나누고, 좋은 공간으로 사용이 되니 저는 더 뿌듯 하고 좋지요. 종교가 달라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런 거 상관 안 해요. 제가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요, 마을 일로 만난 사람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이 중요하지, 어떤 신앙을 갖고 어떤 종교를 믿고 있느냐를 갖고 평가 하는 게 아니지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제일 힘든 것 또한 사람이에요. 마을에서 활동하다 보 면,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도 있고,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도 있고,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떠나가는 사람 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의도와 달리, 상대방을 쉽게 판 단하고, 자기 자신만을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행동하 는 사람들로 인해서 힘든 부분들이 있지요. 원칙적으 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고언을 합니다. 원칙을 이야기하면 그래도 수긍하고 통해요. 사람들과의 관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자꾸 만나 이야기하고 의논해야지요.

Q. 마을 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삶은 피곤해졌죠.(웃음) 목회도 쉽지는 않아요. 제가 서른 살에 목회를 시작했는데 30년 넘게 함께하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마을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이 또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고 목회 활동의 일환으로 함께 믿고 따라주는 이들이 있으니까 가능했지요.

     광덕지구에 뉴딜사업으로 LH공사에서 주택을 50여채 지으려고 했을 때 주민 반대가 심했습니다. 월피 동 이곳은 월세 임대료로 살아가는 주민들이 많으세요. 빈집이 생기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당연히 어려워졌지요. 그런데 LH공사에서 주택을 지으려 한다니 주민들은 생계 때문에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마을 일을 하다 보니 그분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분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우리 마을에는 교인이나, 마을주민이나 모두 함께 활동한다는 게 변화인 거 같아요. 나이 불문하고요. 저기 들어오시는 두 분 여자 어른들 보이시죠? 한 분은 저 보다 한 살 아래이고, 한 분은 70대인데 마을 활동 열심히 하시는 분들입니다. 이 동네는 젊은 엄마들이 활동을 못 합니다. 대신 동네를 위해 일하고 싶은 65세 이상 70대의 분들이 많아요. 의견 갈등이 있었던 사람들도 마을 일을 같이하다 보니까 서로 알게 되고 이 해하게 돼요.

     또 한 가지 변화는, 이 교회가 말하자면, 동네와는 전혀 괴리된 게 아니라 주민들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는 거죠. 예를 들자면 활동을 할 때 필요한 홍보지를 개인집에서는 컬러 프린트를 쉽게 하기 어렵잖아요. 그럼, 종이에 써서 가지고 오면 제가 편집하고 워딩을 해서, 교회의 복사기로 프린트를 다 해드려요. 언제든지 부탁하면 즉시 만들어서 주지요. 교회 자원이 교회만을 위한 자원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자원인 거죠.

     가시적인 변화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진행되면 서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겼죠. 도시재생 뉴딜 사업대상 지역 안에 우리 교회가 있습니다. 이곳 교회 있는 길부터 서울예대 방향의 길 전체가 리모델링이 될 예정이에요. 밤에 여기가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걸어 다니기 힘들거든요. 24시간 불 밝힐 수 있도록 하고, 양쪽에 길가에 세워진 불법 대형트럭들이 사라지면 더 안전한 마을이 될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궁극적인 활동계획은 손 떼는 겁니다. 하루빨리 손 떼 는 것.(웃음)

     내년에는 마을관리협동조합까지 만들어질 예정이에요. 그러면 일이 굉장히 커지겠지요. 비즈니스화되니까요.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나아가야 할 거예요. 2~4년 정도 기반을 잘 다져 놓은 후, 마을의 젊은 인력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넘겨줘야지요.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 변화와 함께 우리 마을은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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