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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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윤

본오3동, 본오3동 주민자치위원회

“마을 활동은 저를 집에서 끌어내 주었어요.

동네에서 나를 더 크게 쓰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도 더욱 발전하고 있어요.

Q. 안산과 본오3동에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1990년도에 여동생이 결혼하여 안산에 살게 되면서 안산을 처음 알게 됐어요.

    서울에서 살다가 이사를 해야 할 때 여동생의 추천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좋은 초등학교와 살기 좋은 동네를 알아보던 중 분위기 좋은 상록초등학교를 알게 됐고 상록구가 살기 좋은 것 같아 마음에 들었어요. 1993년 도부터 27년째 상록구 본오3동에 살고 있습니다.

     안산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안산(安山)을 편안할 안으로 생각하며 스스로 최면을 걸며 지냈고, 이제는 정말 편안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Q. 마을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처음에는 교육 관련된 일을 시작하여 20년 동안 했고 요, 지금은 본오3동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과 간사, 그리고 본오3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간사로 일을 하 고 있습니다.

     주민자치위원은 동마다 21~25명 정도가 모여 일을 하는데 본오3동은 15명의 주민자치위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회의를 거쳐 문제점을 해결하고, 회의비로 받는 돈을 기부하여 예를 들자면 작은 음악회를 열고 간식 등을 제공합니다. 경로당에 명절 음식 나누기도 잊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들은 불편한 사항들을 동장님과 동행하여 직접 행정에서 수렴하는 방향으로 해결합니다. 본오3동은 아파트, 상가, 주택이 모여 있는 곳으로 주택에 사시는 분들의 쓰레기 문제, 주차 문제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일시적인 대안이 아닌 영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구청, 시청에 연결하는 것으로 민원을 해결할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본오3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18명이 복지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힘든 분들을 조사하고 선별하여 같이 봉사 하는 회원들의 회비로 꼭 필요한 선물이나 청소, 도배 같이 소소한 일들을 하고, 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는 보청기나 임플란트를 지원해 드리고 사업을 진행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산 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로 올 2월까지 활동하였습니다. 그때 고교평준화되는 시점에 학교가 부족했어요. 상록고등학교 집행위원장으로 학교를 설립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뿌듯했습니다.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아이가 2학년 때 아는 선생님의 소개로 학부모 위원 모집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학교 운동장에 인공잔디를 깔고 싶다는 의견을 모아 일을 추진하기도 했어요. 시작은 학교를 통한 활동이 었고 처음엔 학부모 입장이었다가 점점 마을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을 구성원으로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부모의 시각에서 시민의 시각으로 바뀌면서 사람을 알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동에서 봉사 일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사는 내 동네를 좋은 환경으로 만들고 이웃들과 편히 살고 싶었습니다. 본오3동이 사실은 역세권이고 화려한 동네인데 전입 전출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원주민이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래도 이런 환경에서 나는 여기서 오래 살고 싶고, 2년 전 시집간 딸도 저의 권유로 이곳에서 살고 있으니 집에서 놀지 말고 동에서 무슨 일 있다고 할 때 같이 만들어 간다면, 길 가다가 휴지라도 주울 수 있는 마을이 된다면,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고 나서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마을만들기지원센터를 알게 되고, 퍼실리테이터로 7년간 활동하면서 주민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많은 소통으로 제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고, 좋은 동 네 만들기가 점점 이루어져 가고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이 활동하게 되고, 의욕이 앞섭니다. 이 마을에서 ‘당신 이 뭔데?’ 라고 하면 주민자치위원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게 활동을 더 열심히 합니다. 마을만들기지원센터 덕에 사각지대 복지가 아닌 동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직책을 가지 고 일을 하니까 제 역량도 넓어져요. 상록수역이 너무 어두워 가로등 하나 설치하려고 했을 때 제가 문제를 제기해서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구청에 민원을 넣었어요. 차츰차츰 일을 이루어지는 걸 보며 주민들과 같이 마을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가장 소소한 예는 정말 별 거 아닌 일을 해도 애썼다고 손잡아 주시고, 주민들이 알아봐 주세요. 먹을 것도 나눠주는 분도 계시고, 식당에 가도 서비스를 더 챙겨주시고, 다음에 마을 일 있을 때 도와주겠다고 하시면 정말 기분 좋아집니다. 지나다니며 보니 상록수역에 전기가 어두워서 주민자치위원회 부분의 한 역할로 예산 들여서 밝게 해달라고 건의해서 시에서 조치를 취해 주셨어요. 이제는 밝아진 상록수역을 보면 내가 보탬이 되어 좋아진 모습을 보면 내 자신이 으쓱해지고 자부심이 생깁니다. 내 동네 어디를 가도 나와 일을 같이 하는 주민들이 있어요.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잡아 준 분들과 눈인사를 하고, 반가워하고. 그래서 동네가 정말 좋습니다. 3년만 살려고 온 본오3동인데 살아보니 누구도 나를 이렇게 편하게 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절대 떠날 수 없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좋은 점보다 힘든 점이 더 많았어요. 사람이 많이 힘들죠. 학교 일을 할 때는 학교 안에서만 있더니 어느 순간 동네에서 안 보이는 곳이 없다면서 ‘시의원을 하 려 한다.’, ‘후원을 받아서 월급쟁이처럼 돈 받고 일한 다.’ 라는 억측과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 질투가 많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아는 사람이 나를 더욱 괴롭히고, 오히려 모르는 사람은 나를 이해해주고 격려 해주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사람이 많이 무섭고 상처받아서 두 달 동안은 집 밖을 안 나온 적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다 그만해 버릴까?’, ‘동네를 떠날까?’ 고민까지 했습니다. 주민자치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직책까지 맡고 나서는 더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이제는 더 조심히 활동하려고 해요.

     본오3동 하면 예전에는 술집, 총알택시, 우범지대가 먼저 떠오르는 동네였지만, 지금은 먹거리가 많고, 최용신기념관도 있고, 상록수역이 있어 교통이 좋고, OK 배구단 체육관까지 자랑거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앞으로 동네 인식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마을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Q. 마을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다들 소극적일 거 같은데 저 사람한테 저런 면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요. 처음에 길을 트기가 힘들지 일을 하고, 성취감을 느끼면 마음속이 쿵쾅쿵쾅 뜁니다. 결혼 하면서 무뎌진 줄 알았던 열정이 교육 일을 하고, 마을 일을 하다 보니 계속 움직여요. 나의 잠재력의 어디까지일지 스스로 궁금해집니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주위에서 바라보는 소극적인 내가 외향적이고 활달하게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해지더라고요. 또 한 가지는 집안일만 할 때는 꾸미지 않았는데 이제는 항상 집에서도 화장하고 꾸미고 다녀요. 언제 어디서나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주민을 만났을 때 숨지 않으려고요. 나는 안 부끄럽고,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최면을 걸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나 자신의 열정과 용기를 키우고 있어요.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이 내 나이가 10년만 젊었더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을 활동은 나를 집에서 끌어내 주었어요. 그리고 동네에서 나를 더 크게 쓰라고 나 스스로 더욱 발전하고 있어요. 그럴 때 너무 흥분됩니다.

     아침에 화장할 때 내가 조금 뚱뚱해도 나는 이런 체격이 좋고, 머리하고 화장하고 옷을 차려입으면 예뻐 보여요. 동네에서 본오3동의 멋쟁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럴 때 더 변하고 더 열심히 화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니까 어디 가도 절대 기죽지 않아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동네에 나지막해서 산책코스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산이 있는데, 남편이랑 산에 오르다 보면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비 오고 난 뒤에는 질척거려서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민들과 의견을 모아 산책로 길을 깔아달라는 민원을 넣어 지금은 더욱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을 밟을 때마다 주민 여럿이 같이 서명받고 건의하며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 정말 뿌듯합니다. 그 변화를 내 덕분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남편에게 감사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먹자골목에 있는 소방서가 좁은 길 때문에 출동할 때 어려움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소방서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고, 쉽지 않았지만 10년 만에 넓은 길이 있는 곳으로 이전했는데 나도 주민으로서 일조 한 게 자랑스럽습니다. 또,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건의하여 노인분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평상을 놓아드렸습니다. 그곳에 모여 계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항상 고맙다고 인사하며 손을 잡아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감동입니다. 늘 먼저 인사 하던 나에게 상가 분들도 본오3동의 주민이 나를 보고 인사해주시고, 소통해주시는 모습에 동네가 환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마을에 사는 동안 나는 내 역할 만큼은 하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주민이 생활하기에 편한 동네가 아니고, 교육 같은 면에서도 부족해요. 그래서 전출이 줄어들지 않아요. 이웃 간의 침묵으로 서로 잘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웃이 문을 열고 먹을 것도 나눠 먹고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반상회를 하자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인권 보호, 가정 사생활 보호 때문에 반상회가 없어졌어요. 살다보면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르고, 모르는 일이 많아서 멀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반상회를 집에서 못하면 관리사무소를 재정비해서 같은 날 할 수 없어도, 어찌 되었든 자리를 마련하여 주변과 불편한 점을 나눴으면 좋겠습니 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냥 흥겹게 놀다가 박수치고 떠나고 하는 게 마을이 아니고, 서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소통하는 게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만 일하는 마을은 발전이 없습니다. 몇몇이 칭찬받으면서 다니려고 일을 하는 것 은 아니고, 집에 계신 분들이 같이 마을 일을 하면 좋겠어요. 사람들에게 흔히 보여 주기식의 발전은 진짜 발전이 아니에요.

     마을 만들기의 첫 번째 단계는 사람 만나기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같이 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주민 모두가 마을 일에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누구든 마을을 위해 일하자면 싫다는 소리 절대 안 하는 마을이었으면 좋겠어요. 마을이 싫고 나쁜 건 보완하면 됩니다. 손자 손녀가 태어났을 때 정말 잘 살 수 있는 마을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본오3동 주민으로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마을 활동은 70살까지 하려고 합니다. 주민들에게 상록구 체육관, 도서관이 생기는 건 일시적 관심일 뿐이에요. 하지만 주민들이 마을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자기 집 주변 반경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가?’ 입니다. 공간을 시설로 채울 수는 없어요. 이웃간의 소통, 정다움이 필요하고, 그것이 마을 만들기의 기본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이 시대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감사해하고, 이런 게 사는 거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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