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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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영

사동, 감골주민회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마을처럼 더 재밌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Q. 안산과 사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결혼하고 한동안은 서울에서 살았었어요. 그런데 집값이 비싸서 걱정하니 안산에 살고 있었던 친오빠가 안산으로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만삭일 무렵, 안산으로 오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친오빠가 사는 동네, 본오동으로 집을 알아보았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사동을 추천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사동에서 살게 되었어요.

     서울에 살 때 성미산 같은 마을을 꿈꿨어요. 왠지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며 살고 있어서 직장 끝나면 사회적 경제 관련 강의를 듣기도 하고 책을 보며 협동 조합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었어요. 안산에 처음 왔을 때는 그런 공동체 활동이 없나보다 생각했어요. 당시에도 지금의 감골주민회가 있었지만 인터넷에 관련 내용을 찾지 못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 우리 마을은 가장 ‘협동스럽게’ 살고 있었더라고요. 잘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이게 협동이지!’라는 느낌으로 더불어 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제가 처음으로 한 마을 활동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마을 축제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제가 문서 작성이나 PPT 만드는 것은 자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미지 몇 개 넣어서 포스터처럼 보이는 PPT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직장에 복귀하고 나서도 그 일을 계속 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재미가 붙더라고요. 일러스트 공부도 해서 예쁘게 해보자는 욕심도 생겨 2~3년 도와드리면서 실력을 키웠고, 직장을 그만둔 2017년 무렵에는 제가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서 지금은 거의 모든 디자인, 기획업무를 제가 하고 있어요. 올해부터는 마을 생생기자단 활동도 하는데 프로그램이나 축제를 기획하는 순간부터 저는 기사를 어떻게 쓸지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고, 주민 대상으로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덤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피드백도 되니 참 편했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직원이 1000명 정도되는 회사에 다녔는데, 제가 결정해서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적었어요. 하지만 마을은 달랐죠. 새롭거나 창의적인 걸 만들고 싶을 때는 마을 활동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결단했죠, 삶을 바꿔보자고.

     육아휴직 기간에 운동 삼아 길을 걷다가 마을계획 실천단 모집 현수막을 보고 마을계획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마을계획 실천단을 하고 싶다고 행정복지센터에 찾아가니 연락처를 적고 가라고 해서 적었는데,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그때 분임토의 등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어요. 60일 된 둘째를 안고 갔는데 나에 대한 소개를 다섯 글자로 말해보라 했을 때 ‘몸푼지 두달’이라고 소개를 했어요. 그때부터 거의 모든 마을 활동을 아이를 안고 다니며 했어요. 저보다 다른 분들이 우리 아이를 잘 봐주셨어요. 동네 언니들이 포대기로 아기를 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함께 키워 주셨고 그 덕분에 저는 마을에서 우쿨렐레도 배우고 마을 계획 실천단도 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었지요.

     육아휴직 끝나고 저는 회사로 돌아갔지만 예전과는 달랐어요. 집과 직장만 오갔던 저였는데, 퇴근 후나 주말이면 항상 마을과 함께였죠.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과 마을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고, 제가 회사에서도, 마을에서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모든 것을 다 잘 해내려하다보니 몸도 마음도 좀 지치는 듯 했어요. 그래서 결국 회사와 마을 중 마을을 선택했던 거죠. 사람들은 먹고살 만하니까 직장을 그만 뒀다고 얘기를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웠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장을 그만두고 마을 활동을 하면서 ‘적게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나름의 모토를 실천하고 있어요. 후회는 할 때가 있죠, 돈이 아쉬울 때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고민이 되면서도 결국은 잘했다고 생각해요. 마을의 인프라와 마을의 혜택을 내가 누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거라는 믿음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 셋방살이 할 적에 골목 하나를 두고 비슷한 또래가 사는 여섯 집이 한 가족처럼 관계를 맺으며 살았어요. 저도 그런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어요. 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었지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우선 개인적으로는 자기 계발할 수 있어서 좋아요. 마을 활동을 하면서 제가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터득해 나가는 게 만족스러워요. 그중에 글쓰기를 통해 개인적으로 역량이 커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컴퓨터 앞에서 뭐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엄마가 일하는 구나.’라고 인지를 해요. 보통 마을 일을 하면 ‘쓸데없는 일 한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제가 뭔가를 하면 축제가 만들어지고 포스터가 나오는 것을 아이들과 남편이 보고 느끼니까 제가 하는 마을 일을 진짜 일로 받아들여주고 존중해 주는 것에 대한 보람도 있어요. 그리고 두 번의 마을계획을 통해 많은 의제들이 실행 되는데 제가 힘을 보탰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의류 수거함이 지저분하다고 없애기로 안산시에서 정했다고 하는데, 그게 우리 마을의 의제 중 나온 아이디어였고, 공유센터도 저희가 제안했던 의견들이 정책으로 실현 되어서 저희가 냈던 아이디어들이 실행되어 가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아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마을 활동가’가 되는 순간인 것 같아요. 활동가라고 하는 사람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나 혼자 그리는 것 이 아니라 생각해요. 활동가로서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혼자 한다고 하면 세상 쉬운데 같이 하는 게 힘든 거예요. 

     활동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역할이 주어지고, 역할 을 수행해야 하는 순간, 나와는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 사업을 해야 할 때 최선을 다해 설명하지만,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려 할 때 참 힘들고 기운 빠져요. 이해되지 않으니까 참여하는 사람들도 힘들고, 그 걸 보는 저도 속상하기도 하죠. 머릿속이 아니라 가슴 속에 와 닿아야 하는데, 아직은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 만들기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올해 같은 경우도 코로나19로 마을 활동이 어려웠지만, 우리 마을은 어린이날 축제 외에는 모두 진행을 하고 있어요. 결국 계획한 마을 활동 프로그램을 다 하고 있는데, 그것을 레벨업 시키는 과정이 힘들어요. 잘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하면 어려운 게 없죠. 일반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게 어려워요.

     이런 주민들과 함께 활동하며 더 많은 주민들을 마을 살이에 참여시키려면 결국엔 사람이 좋아야 되는 것 같아요. ‘화영 언니가 좋으니까 믿고 가보자.’, ‘의미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저 언니가 하는 말은 괜찮아.’, ‘네 삶을 보니 나도 한번 가볼래.’ 이렇게 생각하며 내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그렇게 함께 하다 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함께하는 사람들도 이해하고, 삶이 전환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저는 마을 활동이 교회 전도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의 의미보다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요. 마을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간극이 있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사이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Q. 마을 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학교 다닐 때 줄반장 한번 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아이에게도 가끔 물어봐요. 엄마가 직장 다닐 때가 좋은지, 지금처 럼 마을 활동을 하는 게 좋은지.

     사실 마을 활동을 하면 직장 다닐 때보다 아이들에 게 넉넉하게 해주지 못하는데도 아이들은 엄마가 직장에 안 가면 좋다고 해요. 그리고 옷 물려 입는 것도 싫어하지 않고, 나눔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니 오히려 삶의 질은 예전보다 더 높아 졌어요. 예전에 집은 그저 하숙집이었어요. 주중에 우리 부부는 직장에서,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지내다가 주말이면 자주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 가지 않아도 동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서 만족해요. 요즘에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마을처럼 더 재밌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는 나의 처지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거리낌 없이 나를 얘기하는 게 달라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 순간 제가 후배들에게 ‘넌 요즘 사는 게 어때?’ 라고 물어보고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어려움을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해결하려고 하는 열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을 활동을 통해 같이 얘기하고 하는 것만으로 풀린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어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어느새 훌쩍 커서 군대를 다녀온 아이들이 ‘청소년 공간을 저희한테 맡기세요.’ 하는데 대견했어요. 여기서는 동네 이모들, 삼촌들이 아이들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살아요. 덕분에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정말 자연스럽게 잘 넘겨요. 부모님의 갱년기와 아이들의 사춘기가 겹치면서 요란하게 보내는 것은 옛말이 되었어요. 우리는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해가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우리 공동체에 대해 관심 갖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 을 실감해요. 확실히 갈수록 홍보가 중요해지는 시대 같아요. “보여지는 게 뭐가 중요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사실, 유명한 마을이라고 해서 막상 가보면 포장만 그럴싸한 데가 더러 있거든요. 그런데도 홍보를 담당하는 제 입장에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더 많이 알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제안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100%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끊임없이 제안하다보니, 이제는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이나 홍보물을 보고 찾아오시더라고요.


Q.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떠신가요?

일단 코로나를 잘 이겨내야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데 코로나 때문에 못하는 게 많아요. 일단 마을공동체를 다양한 미디어로 홍보하고 싶어요. 마을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영상 콘텐츠를 더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기획한 축제를 즐기게 하고 싶어요.

     “안산에 뭐가 제일 괜찮아?”라고 했을 때, 저는 마을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그 중 우리 마을 사동이 제일 잘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하는 활동들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면서 하는 일이라 질릴 틈이 없어요. 그리고, 마을 안에서 먹고 사는 게 해결돼서 마을 활동이라는 것 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 주부들이 하고 싶은 일이 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마을로 돌아와서 마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성취감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잘 해내는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무언가를 계속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연결해가는 과정들을 잘 만들어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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