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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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숙

​고잔동, 고잔동 주민자치위원회

“제가 지금도 건강관리를 해야하지만

마을 활동을 하면서 몸을 걱정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더 빨리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Q. 안산 고잔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1979년에 안산에 와서 3년 정도 살다가 서울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 후, 다시 안산으로 돌아왔지요. 공터를 집터로 만들려는 개간사업이 진행 중이었는데, 그 사이 인구도 늘어나고, 아파트도 생겼어요. 선부3동 아파트에 입주해서 살다가, 딸이 결혼해서 고잔동에 집을 얻게 되면서 고잔동과 인연이 되었고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지나다니면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 와보니까 정말 정겨운 모습들이 많더라고요. 마을에서 시장이 열렸는데 내가 자란 시골의 장터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제가 안산에 처음 왔을 때는 이곳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섬진강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 분들이 안산으로 많이 이사 왔어요. 그때 당시 공단을 보고 이주해 오신 분들도 많았고요. 그 때에 비하면 안산이 정말 발전도 많이 하고 좋아졌어요.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시나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일반 위원으로 있다가 2년 차에 제가 부위원장을 했어요. 그리고 주민자치위원장이 된 지는 3년 되었어요. 2018년에 주민자치위원님들, 통장님들, 그리고 고잔동에 거주하시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모여서 ‘고잔동 마을계획’을 진행했어요. 고잔동을 구역별로 나누고 구역에 계신 분들이 모여서 마을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마을 조사를 하고, 거기서 나온 의제를 가지고 100인 원탁회의에서 실행할 사항을 결정했어요. 올해는 마을만들기 활동을 통해서 주민협의회를 구성하기 전 단계에 있어요. 쉽지는 않지만, 열심히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어요.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단원고 앞길에 마을 정원을 조성하게 되었어요. 2016년도에 아이들을 기억하자 는 의미로 ‘소생길’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세월호 희생으로 그곳은 어둡고 우울했던 거리였는데, 2017년도에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축제를 개최하며 소생정원을 만들게 되었어요. 2017년도에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같이 협조를 했었고, 지금은 별도로 일촌가드너분들이 관리하고 계십니다. 정원에 특별히 마음이 가는 이유는, 식물들에게는 시기가 있고 때가 있는데, 정원을 그냥 놔둘 수가 없잖아요. 올봄에는 코로나19로 단체활동으로 어려웠지만 조금씩 움직이며 정원을 꾸준히 관리했더니 점점 좋게 변하고, 예뻐지고, 깨끗해지고 하니까 다들 좋아했지요. 이번에는 조명까지 설 치해서 정원이 더 예뻐지고 있어요. 저녁 시간이 되어 주위가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며 정원길이 너무 예뻐요. 2017년도에 정원을 만들 때도, 이번에 세종시에서 수상한 정원을 홍보해서 벤치마킹하게끔 계획중이라 기대를 하고 있어요.

Q. 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습니까?

선부 3동에서 2040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동대표로 시작을 해서 전체 부녀회장, 통장 일들을 하면 공동체 생활에 입문하게 된 거죠. 통장을 3~4년 하다가 개인 사업을 하게 되면서 거주지는 안산이 었는데 거의 서울에서 생활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마을 활동도 잠시 접게 되었어요. 그 후, 고잔동으로 이사 와서, 주민자치위원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보게 됐어요.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 마을 활동을 접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때가 2013년도 일거예요.

     처음에는 친목회 정도로 운영이 되었는데, 세월호 사고 이후 고잔동에 피해자가 가장 많은 이유로 여러 시민단체들이 고잔동으로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고잔동의 단체들도 활성화되었고, 더불어 주민자치위원회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발 담갔다가 두발 퐁당 빠지게 된 거예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올해 마을 정원이 4년 차인데 지속적인 관리로, 산림청에서 주최한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동상으로 수상을 하게 되었어요. 공동체 정원으로 저희가 꾸준히 관리해서 많은 점수를 받은 것 같아요. 마을 정원으로는 안산에서 고잔동이 최초의 정원이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잘하고 있으니 큰 기대를 하고 있어요. 이번 에도 시민주도형 마을 정원 만들기 평가에서 ‘고잔동 우리가 하나 되는 마을 정원 소생길’이 ‘2020 경기도 우수마을 정원상’에 선정되는 기쁨을 갖기도 했지요.

     고잔동 주민자치위원회는 2018년에 전국주민자치 박람회에 우수상을 받았어요. 전국 3000개가 넘는 동에서 서류, 면접 심사를 봐서 시상하는 거예요. 대단히 기쁘고, 굉장한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마을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활동을 하다 보니까 내가 아닌 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마을 일을 하는 사람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좋아요. 세월호 사고가 나고 학부모들을 만나면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드는지, 애써 피하곤 했었는데, 마음고생 한 분들과 밥이나 같이하면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밥 한 끼 합시다’라는 행사를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추진했어요. 매년 4월에 희생자 부모님들과 50여 명 정도 함께 모여 진행합니다. 6년 차가 되다 보니까 이제는 가족같이 느껴져요. 처음에는 그 슬픔에 대해서만 얘기를 했었고, 서로 서먹했죠. 불편하고 서로 피하기도했는데, 서로 너무 아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잃어버린 자의 슬픔도 있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 트라우마를 승화시키기 위해서 애쓴 주민들 그리고 여러 단체들도 많아요. 모두 마음을 합하여 함께 하고 있지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같이 워크숍을 가고, 봉사활동을 할 때 리더로서 다른 사람보다는 하나 두 개를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 보람이 되는 만큼 고충도 많아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는 마을 안의 공동체 활동으로 함께하는데 그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정원 만들기 봉사를 하다 보면 땡볕에서 일하니까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요. 정원사가 처음에는 20명이었는데 지금 10명으로 줄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정원사가 아니라 공공근로자인줄 알고, 얼마 받고 일하는지 물어볼 때도 있어요. 정원사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하면 약간의 노동의 대가라도 받을 수 있게 하냐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보수가 없는 봉사는 꾸준함이 없다고 해요. 점심값이라도 조금 챙겨 줄 수 있게 해보고 싶어요.

     조례를 제정하고, 정원사들이 안산에서만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게 정착시키려고 포럼도 준비하며 자주 의견을 나누고 있어요. 마을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지만, 언제까지나 열정과 봉사만으로 지속하라고 할 수 없어서 그런 부분이 가장 힘 들어요.

Q. 마을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제가 중대 질병을 앓아서 지금도 건강관리를 해야 하고, 지금도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해요. 병원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고민이 많아요. ‘어디가 또 아플까?’ 몸이 조금 이상한 부분이 생기면 ‘혹시 큰 병 아닐까?’ 하며 걱정하며 지내는데, 저는 마을 활동을 하면서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더 빨리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내가 마을 일을 안 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제 나이가 67인데, 그러면 할머니 역할이나 해야 하고, 여자들끼리 수다나 떨러 다니고 했을 거예요. 몸은 좀 힘들지만 애쓴 만큼 수상도 하러 다닐 수 있고, 어디 가도 주민자치위원장이라고 말할 수 있고, 누구라도 칭찬 할 수 있는 단체에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큰 점수를 줄 수 있어요. 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고, 이웃집도 모르고 지냈는데, 지금은 위원장이라고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요.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았을 때는 행동이 자유로 웠다면, 지금은 공인이 되어 행동에 좀 더 심사숙고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마을 활동을 하면서 남편들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어요. 일촌 가드너 벤치마킹을 하러 갈 때는 남편들도 함께 갔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사실 우리 일촌가드너들이 모두 여자분들이라 삽질이나 힘쓰는 일을 해야 할 때 힘든 부분들이 있는데 이제 남편들도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해주니 참 뿌듯하고 좋았어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가 고잔동으로 이사 와서 빌라 생활을 하는 데 주위가 많이 지저분했어요. 화단을 꾸며야 할 곳에 농작물을 심어 놓으시고, 울타리에 장판도 붙이고, 담장 아래 에서 쓰레기가 너무 많았어요. 통장님을 찾아가서 건의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명분이 없으면 마을 일을 하는 것이 어렵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어서 주민자치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동네에 단지별로 자치회를 구성해서 화단에 꽃을 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동네 어르신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요. 그러시던 분들이 이제는 마을에 동화되어서 같이 꽃도 심고 가꾸고 하십니다. 다른 지자체에서 소생정원에 벤치마킹을 오면 마을 안까지 둘러봅니다. 우리 고잔 동에는 마을 안 빌라에도 정원을 만들어져 있어요. 빌라 안 깊숙이까지는 정원이 없었는데, 그곳에 사시는 정원사분들이 개인적으로 화단을 가꾸기 시작했죠. 우리 정원사님들의 소소한 노력과 봉사가 받침이 되었어 요. 이런 활동들을 잘 알고 있어서 제가 동장님께 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격려하는 의견을 드렸더니 우리 마을 통장님들께서도 함께해 주셨답니다.

     외부에서 오시는 분들이 고잔동은 유럽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마을 정원이 너무 멋지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해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마을에 여러 단체가 있지만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워서 고잔동에 있는 다섯 단체가 공동의 목적으로 경기마을공동체지원센터 공모사업을 신청하여 사업비를 받았어요. 고잔동은 지난 8년 동안 한 달도 빠지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문화마을신문, 자원순환 단체, 굿 빌리지 협동조합, 젊은 청년들이 의지를 가지고 각 단체에서 하는 일을 엮어서 스토리를 만드는 불꽃 청년들과 주민자치위원회가 힘을 모았어요. 그것이 주체가 되어서 주민자치회로 가는 준비 단계 교육을 월요일, 수요일하는 상태에요.

     또 고잔동에는 ‘공동체복합문화센터’를 2023년도에 건립하려는 계획입니다. 복합문화센터가 생기면 그걸 토대로 마을 여행코스도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안산의 두 개 동이 주민자치회로 활동을 하고 있고, 전 동이 주민자치회로 가려는 준비단계에 있어요. 그 단계에 가장 큰 관심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주민자치회로 가기의 직전 단계에서 고잔동은 준비를 하고 있는 거죠. 마을 활동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는 기회가 되어서 참 좋아요.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생각하고, 해오는 일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세대 변화가 되고, 전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주민들이 마을로 나와 같이 활동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아지 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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