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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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화

이동, 이동 주민자치위원회
 

“마을만들기 활동으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해요.”

Q. 안산과 이동에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살 게 되었나요?
 

저는 원래 경상도 사람이라 학교도 대구에서 졸업했는데 남편 만나 결혼을 하면서 서울에 오게 됐어요. 두 아이를 낳고 마침 남편 회사에서 사택(社宅)을 짓는데 그냥 준다고 해서 왔어요. 그런데 막상 오니까 법이 바뀌었다면서 분양을 받아야 한대요. 고잔동 은혜와 진리교회 뒤쪽에 회사에서 지은 빌라가 있었거든요.

     하여튼 그 일로 서울 홍제동에서 이쪽으로 90년도에 왔어요. 아이 기르느라고 마을 일은 동네 안에서만 좀 했는데 제가 둘째를 업고 분리수거를 하는 걸 보고 사람들이 저보고 잘한다며 부녀회장을 시켜 놓았더라고요. 반상회도 안 갔는데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겼죠.

     당시에 저는 아기가 어려서 지금은 못 한다고 했는데 그때 활동했으면 안산에서 저를 다 알았겠죠?

     그렇게 주부로서 삶을 살다가 이동에서 지역아동센터를 하게 된 건 제가 교사자격증이 있는데 직업으로 연결이 안 되고 경력도 단절되니까 이걸 어떻게 하나 하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 돌보는 것도 교사의 한 부분이라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면서 이동에 오게 됐어요.

     지역아동센터를 하지 않았으면 상록구를 아예 몰랐을 거예요. 거주지가 단원구라 그 근처만 알지, 제가 여기저기 다니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까 정말 생소했거든요.

     여기 와서 지역아동센터를 한 지가 11년째인데 그전에는 내가 안산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이동이라는 동네가 생소했어요. 지역아동센터를 시작하면서도 지리를 모르니 깜깜하더라고요.

     천천히 아이들과 산책하러 나가서 다니다 보니 ‘이동이 이 사이에 콕 있었구나’, ‘저 앞에서 내가 지나가던 왼쪽 길이 이동이었구나’ 하고 알게 된 거죠.



Q. 마을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계시나요?
 

가장 큰 목표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고, 마을로 우리가 일하는 쪽으로 잘 이끌어 내는 거, 마을에 역량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찾는 거예요.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저의 욕심은 사람을 발굴하는 건데 그게 참 어려워요. 우리 이동 주민들은 주민자치위원장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경기도 사업을 받아와서 고맙다, 우리도 가서 어서 도와주자’ 이런 게 대부분인데 ‘이 시국에 왜 이렇게 일이 많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저는 이번에야말로 이동 주민들이 마을 자치에 대해서 좀 많이 알고 가자는 마음이 커요. 제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 마을 자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정말로 주민 자치가 실현됐을 때 서로 불협화음이 없이 협력하는 관계 맺음을 기대하거든요. 저의 역할을 징검다리처럼 중간역할로 설정했거든요.

     우리 이동이 하는 사업이 크게 두 가지 사업인데 경기도 마을 자치사업 1개와 경기도 자원순환사업 1개 예산을 받았어요. 그런데 일을 하려니까 사람이 없더라고요.

주민자치위원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부랴부랴 준비했죠. 마을 자치가 되기 위해서는 연습을 해봐야 하는데 주민자치위원회만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했고 주민협의회를 구성해 주민자치를 끌어나가야겠다고 판단해 주민협의회를 구성 후 사업 신청을 했어요.

 

     주민자치사업의 한 예로 꽃무릇(상상화) 명소길 사업을 했어요. 한대 옆 좌우로 꽃무릇 명품길을 조성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는데, 주민들이 직접 심고 또 동장님이 주민들 힘들다고 정지작업(整地作業)을 해주셔서 작년에 이어 진행하고 있어요.

     또 자원순환사업으로는 재활용 정거장을 8월 말부터 꾸준히 계속하고 있고 모집하는 구간이 있어요. 분리해서 해놓으면 안산도시공사가 아침마다 와서 계량해서 가지고 가요. 연말이면 자원으로 돌아올 수도 있어요. 얼마나 될지 양을 측정하고 있고요. 행정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하니까 민원도 많이 줄었어요. 우리 동의 행정 공무원들과 협의회 자원봉사자들 간 단톡방을 만들어서 주민이 필요한 부분, 행정이 필요한 부분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Q.어떤 계기로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요?
 

고잔동에 살 때 어느 날 동에서 총무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어요. 고잔동 행정복지센터에 아이들 공부방을 운영하는데 초등부 자원봉사 해줄 분을 찾는데 도서실 봉사하시는 분이 저를 추천했다는 거예요.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더니 아이들 공부를 좀 가르쳐주래요. “제가 그거는 어렵지 않지만 매이는 걸 싫어해서요.”라고 했더니 딱 일주일에 하루만 해달래요. 지금 그분이 과장님이신데 일주일에 하루니까 거절하기 어렵더라고요. 마침 제가 역사교육학과를 나와서 ‘사회과목 정도는 쉽게 하겠다.’하고 시작했는데 국어도 하게 되고 수학도 하게 되었는데 이사 오고 그만둘 때까지 3년을 넘게 했더라고요.

     그때의 기억이 좀 재미있었어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가긴 했지만, 저의 적성에도 ‘참 맞다, 의미 있겠다.’ 해서 찾게 되었고, 해오름지역아동센터장이 되며 이동에 인연이 생겼네요. 아이들 돌보는 것은 부모들을 빼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동네 주민들을 알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복지라는 것은 누군가를 돌보는 일인데 제가 동네를 잘 모르다 보니 지역 안에서 연대가 안 되어 답답한 면이 있었어요. 그러다 3~4년을 동네 아이들과 있다 보니까 마을을 좀 알게 됐고 마을과 연대를 해야 하는데 포인트를 몰라서 답답하던 차에 마침 당시 김성수 사무장님이 전화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렇게 주민자치위원을 추천받고 뭔지도 모르면서 시작해서 2년 정도 기획분과장을 하다가 선거를 통해서 주민자치위원장이 됐죠.

     주민자치위원으로서는 5년 정도 있었나 봐요.

 


Q. 마을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보람된 일은 무엇인가요?
 

매일 즐거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서 제가 성장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 이동 주민들이 조용히 있던 사람이 위원장이 되고부터 혼란이 왔을 거예요. 주민자치위원회 하나 하기도 힘든데 어느 날 협의회가 만들어지니까 ‘우리는 뭐지’하는 분위기를 감지했어요. 저는 마을에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런 느낌이 들면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고민이 성장의 동력이다.'라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고민하지 않는 사람에게 발전이 있을까? 이러면서 제가 좀 더 성장해가고 있는 중이에요. 만일 이거 안 했으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붙잡고 낑낑대며 복지 활동만 했을 거예요. 그런데 마을에 와서 주민들과 만나서 즐겁고 아직 많이 열릴 부분이 있지만 그런 부분이 좋아요.

     보람도 그 안에 있는 거 아니겠어요. 주민들이 기뻐 웃을 때 보람되고 저는 복지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인데 주민자치가 보람된 거예요. 그 안에 모든 걸 녹여낼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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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을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힘들었던 거는 사업을 하다 보면 어떤 계획을 세우는 단계가 힘들죠.

어떻게 이 부분에서 주민참여를 이끌어 낼까, 제가 가장 고민하고 힘든 부분이에요.

     ‘위원장이 여잔데’ 그런 일은 별로 신경 안 쓰고 하거든요.

모여라 하면 모이는 사람을 만드는 게 목표인데, 이동에서 잘 도와줘서 제가 힘든 게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지금은 바이러스와의 시간이 힘들죠.


Q. 마을만들기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사람을 이해하는 시각이 넓어졌어요. 근데 아직도 더 넓어져야 하겠죠. 아직 마을 사업을 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다른 마을 사업하시는 분들을 벤치마킹하면서 따라가다 보니 저의 삶이 더 바빠졌어요.

     한마디로 저의 생각들이 굉장히 편협했을 수도 있는데 점점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시각이 넓어지고 있는 게 변화겠죠.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저는 40세가 넘으면 불혹이라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더니 계속 흔들리네요. 이렇게 좋은 변화라면 계속 흔들려도 되지 않을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해요.



Q. 나의 활동으로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제가 주민자치위원장은 1년이 넘었지만, 마을사업 끌어온 건 1년도 채 안 돼서 어떤 변화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워요. ‘이동도 이런 활동을 하네, 저 사람이 어디까지 하나보자.’라는 시각도 있을 테고요. 어쨌든 우리는 끌어가고 있잖아요. 주민들의 인식변화가 되고 있는 게 보인다고 일각에선 이야기하셔요. '일동만 저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동도 저렇게 하네~' '할 수 있겠다.' '우리도 하면 되겠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제가 돌아보면 복이 있는 거 같아요. 잘 한 것 없는데 사람들이 따라주고 주민들이 이해해 주시는 걸 보면 단점 많은 사람을 허물없이 장점을 보고 가주시는구나, 제가 참 복이 많아요.

     마을사업을 시작하고 일은 해야 하니까 가열차게 달려 온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비난하지 않고 소속 따지지 않고 분위기가 확실히 좋아졌어요.

     주민의 역량도 늘었어요. 이분들이 혼자 생각은 많았는데 의견을 말해서 정책으로 연결되는 걸 몰랐던 거예요. 주민들과 주민자치, 행정, 시의원님까지 함께 모이는 밴드와 톡방이 있는데 주민들이 의견을 더 많이 내줬어요. 주민들은 직접 말할 창구가 없다가 생기니까 좋아하세요. 실제로 주민이 말씀하신 민원사항이 조치가 취해졌다는 사진을 올려주기도 하시고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가요?
 

앞으로의 개인적인 바람은 박사과정을 하고 있어서 논문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바빠서 잘될지는 모르지만, 논문을 잘해서 통과됐으면 좋겠고, 마을 안에서는 주민들이 내 마을은 내가 가꾼다는 의식변화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무엇을 하든, 마을에서 있든 간에 일하는 사람일 거고요, 저보다 나은 다크호스 같은 분이 나오실 수도 있는데 제가 항상 같이 일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동에 계속 있을 거고 어떤 자리에 있든 사람들과 동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룡산 철쭉동산도 재정비가 다 들어갈 거예요. 그러면 내년의 이동은 정말 예쁠 거예요. 내년에도 마을만들기사업은 해야겠지요. 철쭉동산이 정말 예쁜데 완성되면 해야 할 작은 일들이 꽤 있어요. 큰 예산은 국토부 예산이든 가져와서 하겠지만 터를 만들어 놓으면 주민이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야 애착 공원이 된다고 생각해요. 주민들이 좋아하는 게 아른거리는데 어떻게 안 하겠어요.

     기존의 황토십리길은 본오1동부터 연결된 보호수까지 연결된 길이에요 그런데 한대앞역이 생기면서 끊어지고 지하도가 생기면서 일부 구역이 끊어졌어요. 끊어진 부분을 구름다리처럼 연결해주면 안산시민의 건강권이 회복될 거예요.

     저는 지역구 의원님들한테 이야기해서 ‘도비 받아서 이거 좀 연결해달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에요. 이거는 주민들이 해줘야 해요. 이동뿐 아니라 안산시민의 건강권이 회복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또 마을 축제로 플리마켓을 생각하고 있어요. 주민과 주민자치위원회가 연계하면 더 풍성해질 수 있어서 올 연초에 사업을 같이해보고 싶었는데 코로나가 오면서 하지 못했어요.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공원에서 영화 관람을 하며 플리마켓도 하고 편안하게 즐기고 놀면서 어우러지면서 사람을 만나고 주민발굴을 해보려고 해요. 8월 말까지도 플리마켓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논의하고 밑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예산은 어떻게 할 건지 그런데 결국 중지가 돼서 아쉬운 부분이에요.

     제가 복지인 이라서 안산시민들의 건강과 가족들이 손잡고 나들이 가기 좋은 황토십리길이 조성되어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어요. 출출해지면 맛집 많은 한대 앞 상가에서 소비도 좀 해주시고, 1석2조를 바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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